3주가 지났다.


  추격대를 편성하고, 항공정찰을 통해 적을 쫓았지만 오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영주들이 농노 차출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했을 무렵 북쪽 지방의 유목민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크고 난폭한 녹색 괴물에게 쫓겨났다며 보호를 요청했다. 나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남자들을 징집했다. 의심한 여지도 없었다. 괴물의 정체는 오크였다. 비슷한 시기에 슈미츠 중위의 추격대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오크들이 유목민들을 닥치는대로 습격하고 있으며 일부 오크가 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군사회의를 열었다..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이다. 오크들이 총으로 무장하기 시작한 듯 하다."

 "금속을 구한 겁니까?"


  아케이가 손을 들었다.


 "유목민들의 농기구를 강탈한 듯 하다. 놈들은 소규모 제대로 나뉘어 어둠을 틈타 이동하고 유목민들을 습격하는 중이다. 놈들에게 영리한 지도자가 있는게 분명해."

 "더 많은 금속을 얻기 전에 막아야겠군요."

 "놈들의 지휘관의 행동 방식을 봤을 때, 그 놈도 화력의 열세를 자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총화기를 충분히 모을 때까지 우리와의 교전을 회피하겠지. 놈들을 끌어낼만한 방법이 있는 사람 있나?"

 "일단 유목민들을 보호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콜베르 중위가 말했다.


 "먼저 금속 보급을 차단해야합니다."

 "이미 슈미츠 중위에게 피난 유도를 지시해뒀다. 하지만 크고 작은 부족들로 나뉘어 있어서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군."

 "헬퓨리 미사일로 폭격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밤에만 움직일 정도로 영악한 놈들이다. 오폭 우려도 있고, 야간의 안개 속에서는 쉽사리 발견되지 않을거다."

 "저희 소대가 요격 임무를 맡으면 안되겠습니까? 전차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겁니다."

 "반대로 매복에 걸려서 전차를 잃을 수도 있지. 이 놈들은 우리가 상대하던 오크와는 다르다."


  콜베르 중위는 불만이 있는 듯 했지만, 아무 반론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의견은 없는가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라는 말을 들었으니 이야기를 꺼낼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아케이, 신병 훈련 진척은 어떤가?"

 "일주일, 아니, 적어도 사흘은 더 주셨으면 합니다."

 "좋아. 그렇다면 닷새 뒤에 우리도 추격대와 합류한다. 중대 모두 피난 유도를 할테니, 그때까지 군장을 준비하고 충분히 휴식하도록."


------------------------


  내전이 끝나고, 내가 제 3983 유격대에서 임페리얼 가드로 재편 될 적의 일이다. 갑자기 임페리얼 가드에 소속되었다고 내가 갑자기 가드맨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연대에는 재 훈련을 위해 카디아에서 군사고문단이 파견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아케이를 만났다.


  기술적으로 아득하게 앞서나간 군대의 훈련방식도 재래식 군대와 다를바 없었다. 훈련소에서 배운 것들은 뛰고 구르고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법, 목숨을 버리고 적을 죽이는 방법이었다. 그런 것은 1년 간의 전쟁으로 이미 익숙해졌다. 우리는 맨손으로 적의 초인과 맞서야 했으니까. 전방부대는 라스 병기가 지급되기도 했다지만, 우리 유격대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라스건 사격 교육 만은 특별히 인상 깊었었다.


 "오늘 일과는 제식 장비 교육이랜다."


  소대장은 그 말만 하고 나가버렸다. 자기네들끼리 뭔가 할 일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마음에 드는 소대장은 아니었다. 그는 연대에서는 정말 드물게, 전쟁 경험이 없는 햇병아리였다. 아버지의 힘으로 군복무를 회피했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징집된 케이스였다. 카디안 군정은 예전 권력자를 그다지 배려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나마 소대장은 학위 만은 높았기 때문에 비어있는 초급장교 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어째 멍청한 놈들만 살아남았다.


  중대가 전부 모여 대기하고 있으니 처음 보는 사람이 왔다. 전체- 차렷! 하고 1소대 1분대장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병사들은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는 체격이 좋다기 보다는 뚱뚱했으며, 숱이 얼마 없는 머리 아래로 까무잡잡한 얼굴에 흉터와 주름이 가득으며, 카디아 패턴의 전투복 위로 방호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내 이름은 다들 알겠지? 사실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한 달 후에는 얼굴을 다시 마주할 일도 없을 테니 이름을 몰라도 문제없지."


  그는 병사 중 한 명을 가리켰다.


 "어이, 거기 너. 라스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하지만 병사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굉장히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라스건을 집어들었다.


 "이건 칸트렉스 패턴 라스건이다. 가드맨의 가장 표준적인 무장이면서도 네놈들의 목숨보다 소중한 물건이다. 그냥 간단하게 목숨이라고 생각해라. 라스건이 망가지면 총살이니까.

  기본적으로 라스건은 여러가지 패턴이 있지만 모두 동일한 구조를 바탕으로 약간의 변경점 밖에 없다. 다시 말해, 동일한 파워팩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파워팩 하나당 2000발을 사격할 수 있지. 네놈들의 저열한 문명 수준을 생각하면 이런 병기를 들게 되는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심지어 이 중 절반 이상은 남은 인생 동안 한 탄창 들이 2000발을 전부 다 쏴보지도 못 할 거다.

  자,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저길 봐라."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모래주머니가 있었다. 마치 성벽이라도 만드려는 듯 서너겹으로 두껍게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교관이 시선을 보내자 녹색 눈에 의안을 한 카디아 병사가 소총을 들고 주머니를 조준했다.


 "지금 이 녀석이 들고 있는 것은 K 뭐시긴 거시긴가 하는 네놈들 구식 소총이다. 좋아, 사격 개시."

 "사격 개시!"


  병사가 방아쇠를 당기자 소총이 불을 뿜었다. K-16 소총은(*1) 무시당한 울분이라도 토하듯 풀 오토로 30발의 불꽃을 토해내고서야 멈췄다.

  사격이 끝나고 병사가 모래주머니 하나를 들고 왔다. 주머니 한 쪽에서는 횡하니 뚫린 구멍으로 모래가 질질 새어나오고 있었다. 교관은 모래주머니를 받아들고 앞뒤를 뒤집어가며 보여주었다.


 "이 케이 뭐시기 소총은 이런 모래주머니 하나 제대로 관통하지 못했다."

 "이건 두 번째 열에 있던 포대입니다, 원사님."

 "그럼 하나는 관통했군. 포대는 두껍게 쌓아뒀나, 타디스?"

 "예, 그렇습니다. 10열로 쌓아뒀으니 마음것 갈기셔도 됩니다."

 "좋군. 자, 그럼 이 맹꽁이 놈들아 눈 똑똑히 뜨고 잘 봐라!"


 교관은 라스건의 개머리판을 옆구리에 끼고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륵거리는 낮은 소리와 함께 짙은 이온 냄새가 났다. 라스건의 총구에서 수십 줄기의 레이저가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 포대 주머니에 명중했다. 모래 포대는 비명을 지르며 펑펑 터져나갔다. 새까맣게 탄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다. 앞 열의 병사에게까지 모래가 튕 정도였다. 교관이 백 수발을 쏘고 나자 모래포대로 된 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든 병사가 입을 쩍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 병사들에게 교관은 약간 으시대며 말했다.


 "봤나? 이게 진짜 총이라는거다."


  그것이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 데바의 신병 훈련소에서 신병들을 교육하는 교관, 조교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때의 기억이 현재의 모습에 겹쳤다. 레퍼토리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같아서 웃음까지 나왔다. 킥킥 거리는 내 모습을 아케이가 물끄러미 처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이야."

 "옛날 생각?"

 "훈련소 말이야."

 "아아…"

 "저거, 자네가 가르친거지?"


  아케이가 머쓱한 듯 살짝 웃었다.


 "그거야 뭐… 그나저나 좀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직접 봤잖나."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아케이의 말투가 바꼈다. 병사들 앞에서는 부하로서 철저히 존대했지만 사적인 공간에서는 친구였다.


 "이제야 사격법을 배우고 있어. 게다가 부대 적응 기간도 없이 작전에 투입되는거야. 솔직히 말해 머릿수 채우기 이상의 의미는 없을걸세."

 "적어도 유목민들의 백병전 능력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들었는데."

 "오크 상대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있겠지…. 있어야겠지."


  나조차도 놀랄 만큼 차가운 음성이 나왔다.


 "필요하다면 말이야."
 "버리는 말로 쓰려는건가?"


  아케이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건 아니야. 징집병들은 내가 직접 지휘할걸세."

 "승산이 얼마 없다고 보는건가?"

 "그럴리가 있나? 우리는 전차와 건쉽으로 무장하고 있고 놈들은 맨손이지. 하지만 놈들이 더 많은 금속류를 구하기 시작한다면야… 점점 힘들어지겠지."

 "부담스럽나? 중대 지휘관이라는게?"


  임페리얼 가드의 중대는 경우에 따라서는 10여개 이상의 소대, 4천명 이상의 군인으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군사집단이었다. 그 위에는 대대나 사단이 없어 바로 단독 작전이 가능한 최소 전술 단위로 취급되는 만큼 중대장의 권한은 매우 막강했다. 그만큼 책임감과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사실 나는, 그것보단 총독으로서의 책임이 부담스러웠다. 임시직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전투를 앞두고 그런 사실을 털어놓기도 괜히 뭐해서, "아니야. 괜찮네. 평소대로만 한다면 별 문제 없을거야." 라고 답했다. 아케이는 살짝 웃으며 "아무렴."하고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1) K-16 오토 라이플 :  K-16 오토 라이플은 오토건의 일종이다. 65발 들이 탄창을 사용하고 구형 화약식 추진체를 사용하여 탄환을 날려보내며, 신뢰성은 불법적으로 사용되는 대다수의 오토건에 비해 월등하지만 그 성능은 조잡하기 그지 없다. 코어 3의 병사들은 제국에 편입되기 전까지 오토 라이플을 기본 장비로 사용했었다.


 

Range

S

 AP

Type 

K-16 Auto-Rifle

 24"

2

-

Assaul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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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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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타니아에서는 예프티나가 초췌해진 모습으로 맞이했다. 그녀는 형식적인 인사만을 한 후 침묵했다.

 "갑자기 사라지셔서 그런거랍니다. 많이 놀라셨나봐요."

  데이지 하사가 귀뜸했다. 어쩔 수 없었다. 군인의 아내란 그런 법이었다.

  예프티나는 수척해보였고, 살이 빠졌으며,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건내야 할지 몰랐다. 내심 그녀가 아무말이나 해주기를, 차라리 화라도 내주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벽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총연과 포화 속을 누비는 것보다 한 여성에게 말을 건내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니…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말했다.

 "화가 많이 났소? 미안하고."
 "아니에요…."
 "내 사과하리다."
 "괜찮아요…."

  나는 그녀의 시선을 억지로 내게 돌렸다. 그녀는 약하게 저항했찌만, 결국 못이겨 나와 눈을 맞췄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그녀에게는 정략결혼이었을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단 한 명 뿐인 가족이었다.

 "울고 있었던거요? 나 때문에?"
 "아니에요… 안심이 되서 그런거에요."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출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연락은 해주세요."
 "너무 급한 일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오."
 "최소한 사람을 시켜서 이야기만이라도 남겨주세요."
 "그렇게 하리다."

  안심이 되었는지, 그녀는 시선을 들어 나를 똑바로 처다보았다.

 "약속하신거죠?"
 "물론이지."

  예프티나는, 맑고 투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부끄럽네요. 엉망인 꼴에다… 어린애처럼 굴다니."
 "부끄러울 것 없소. 나는 그런 당신을 사랑하는 거니까."

  그녀 얼굴의 홍조가 조금 더 짙어졌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 많을텐데… 괜찮겠소?"
 "안 괜찮다고하면 어쩌실건가요?"
 "안아줘야겠지."

  그녀는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오크라는 괴물들이 행성을 침공했소. 사납고, 잔인한 짐승들이지. 놈들 때문에 한동안 바쁠거요."
 "한동안 나가 있어야 하는 건가요?"
 "아마도."
 "당신은 뛰어난 군인이에요. 분명 기도 같은 건 필요 없겠죠. 하지만 그래도…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고맙구려."
 "저기… 하지만, 병사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는 마세요."
 "가혹하게?"

  가혹함. 의외의 단어였다. 전투 이외의 것으로 부하들을 몰아붙인 적은 없었다.

 "몇몇 병사들이 그러던데, 훈련이 너무 지나치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마치… 자신들이 소모품 같다고……."

  아마 신병들에게서 나온 이야기인 것 같았다. 충분히 나올법한 불평이었다. 충분한 훈련을 시킬 시간이 부족했기에 강행군을 시켰다. 그러고도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었고, 병사로서 써먹을 수 없었기에 병사 대용품으로 써먹을 수 밖에 없었다. 소모품이라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일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주변을 둘러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새겨들으리다. 오크들을 물리치고 나면."

  그녀는 말을 멈추고 타오르는 벽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나는 그녀를 무척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신병들은 전차를 방어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다. 전차의 앞에서 줄지어 인간방벽을 펼치고 적의 근접을 맨몸으로 막아내는 역할이다. 제국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이고…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전술이기도 했다. 징집병의 대체품은 얼마든 찾을 수 있지만, 전차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만약 그녀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경멸 할 것인가? 나로서는 짐작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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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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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바는 워낙 따뜻한 행성이다보니 1년에 최대 5건까지 수확이 가능했다. 문제는 지력 소모가 크다는 것이었다. 루시타니에서는 이를 비료수입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서르탄은 나무와 돌로 만든 농기구를 쓰고 흑요성 무기를 사용하는 이들이었기에 비료를 사용하더라도 오히려 손해를 보았다. 흙을 깊게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지력이 고갈되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식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이른바 유목 농경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부족별로 몇달에 한번 걸쳐서 식량과 광석 등을 마치고 철제 농기구를 받아갔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라서르탄 특유의 매끈매끈하면서 단단한 비늘 피부를 가진 남성들이 인사를 올렸다. 노르스 부족의 사절이었다. 이들은 냉혈 인간으로서 행성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사절단은 각종 조공을 바치며 신년 인사를 올렸다. 나또한 그들과 의례적인 인사로 답하고 선물을 하사했다. 그렇게 형식적인 대화가 끝나자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신기한 동물을 잡게 되어 가지고 왔습니다."
 "신기한 동물?"
 "네, 보면 놀라실겁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우리에 넣은 동물을 자랑했다.

  그것은 뾰족한 이가 듬성듬성 나있고, 우락부락한 근육에, 덩치가 크며, 단단한 골격을 가지고, 인간이라면 죽었을법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음에도 기묘한 문법의 언어로 시종일관 주변을 위협해대는 녹색 피부의 외계인이었다.

 "그린스킨(Greenskin)!"

  나는 정말로 놀라서 소리쳤다.

 "이 짐승을 생포했다고?"
 "예, 마을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것을 잡았습니다. 세 마리가 있었는데 둘은 죽어버렸지요."
 "잘했네. 하지만 앞으로는 보이는대로 다 죽여버리고 불태우도록 하게."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나는 이들을 치하하고 상을 줘 돌려보낸 후 오크를 심문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오크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오크의 저능한 두뇌는 심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더러 고통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굳이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결국 알아낸 점은 오크 주둔지의 위치와 오크의 우두머리의 이름이 "그락 라그"라는 것 정도 뿐이었다.

  오크들은 항상 무리지어 행동하며, 오크 하나가 발견되면 그 주변에는 수백 이상이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기에 아군 정찰대가 숲 속에 숨겨진 오크 부락을 쉽사리 발견한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정찰대가 수집해온 정보에는 오크의 위치와 수 뿐만 아니라 대략적인 무장상태 등이 있었다.

 "역시나 장비가 아주 원시적이군요. 페럴 오크 같습니다, 각하."

  슈미츠 중위의 말에 아케이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민간인이 오크를 생보하다니… 총화기도 없는데 말이야."
 "데바가 철기를 구하기 힘든 행성이어서 오크의 무장도 빈약한 듯 합니다."

  데이지는 나의 비서 신분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최근 그녀는 행정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맨손이어도 오크는 오크야. 2천 씩이나 있으면 위험하다는데는 변함이 없다."
 "중대장님 말씀대로입니다. 하지만 대체 이렇게 많은 무리가 어디서 왔을까요? 행성에 오크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실제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이지."

  내 말에 아케이가 수긍했다.

 "한 가지 더 다행인 점은 사이커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적어도 아직은 말입니다."

  데이지가 우리의 유일한 사이커를 바라보았다. 아스트로패스는 창백한 얼굴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눈이 멀었기에 시력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무엇이 어떻든, 그의 관심은 회의장 밖의 다른 곳에 있는 듯 그저 침묵하고 있었다.

 "아케이. 병사들의 모집과 훈련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훈련생 1기는 이제 신병으로 써먹을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새로 모은 훈련병은 고작 15명입니다."
 "처음부터 있던 PDF 병력은?"
 "원대 복귀한 탈영병까지 합해서 113명 밖에 안됩니다. 연이은 패배로 사기도 낮고, 치안유지의 핵심인지라 전력으로 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쪽은 신병을 포함해도 보병만 250명 정도. 저쪽은 맨손의 오크 1천 이상. 이 병력으로는 행성 전역은 커녕 거점 방어만으로도 빠듯한 인원이었다.

 "중대장님, 본대에서 지원을 받을 수는 없겠습니까?"
 "무리인 것 알잖아. 본대도 본대 나름의 임무가 있고, 적대환경장비가 부족하다. 설령 지원이 온다고 해도 그 즈음에는 오크의 수가 몇배로 더 늘어나 있을거야."
 "그렇다면, 강제 징병을 건의드립니다. 자원병 모집 만으로는 수요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일리있는 말이었다. 루시타니아인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노들은 영주들에게 묶여있는 처지이기에 훨신 조건이 좋다는 것을 알아도 입대를 할 수 없었다. 또한 데바는 풍요로운 행성이었으므로 유목민과 자영농에게 입대는 별반 매력적인 선택이 아니었따. 나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기에 몇차례 협조 공문을 보내었다. 하지만 영주들은 노동력 부족을 핑계로 대었고 아직 내전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행성에서는 나 또한 이들에게 강경하게 나설 수 없었다.

 "일단 영주들에게 한번 더 사정을 설명해두겠다. 사병을 얼마 정도 빌릴 수 있겠지."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됩니다."
 "나도 알고 있네. 일단은 기다려보게."
 "저, 중대장님."

  데이지가 손을 들었다.

 "임시로 용병을 고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용병을? 이런 변방의 농업 행성(Rural Planet)까지 올 만한 용병이 있겠나? 설마 엘다 같은 외계인들을 고용하자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퇴역군인이나 로그 트레이더(*1)를 말하는겁니다."
 "저는 반대입니다."

 콘스탄틴 슈미츠 중위가 콧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돈을 위해 싸우는 족속들은 위험할 뿐더러 믿을 수가 없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아군은 적군보다 골치 아플겁니다. 특히나 로그 트레이더는 더욱 그렇죠."
 "용병들이 모이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겁니다."
 "지불하는 금액도 상당할 겁니다."

  다른 카디아 장교들도 반대였다.

 "저로서는 징병을 추천드립니다만, 용병이든 뭐든 일단 예비병력을 채울 수 있다면 찬성입니다."
 "대개의 용병들은 전직 군인들이니만큼 큰 문제는 없을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해고하면 될일입니다."

  아케이와 데이지는 찬성이었다. 회의 결과 간부들 간의 찬반이 딱 절반으로 갈리게 되어 결국 나의 결정에 달리게 되었다.

 "로그 트레이더는 안된다. 너무 위험해. 인간 용병에 한정해서 구해보도록."
 "옛!"

  나는 용병을 고용한다는 공고를 내었다. 한편으로는 오크에 대한 위력 정찰을 실시하였다. 이 임무에는 예리코 하사의 레틀링 분대와 2소대를 투입했다. 2소대는 코어-3에서 신병이 다수 충원되었기에 인원 면에서 여유가 있었고 신병들은 전투경험을 익힐 필요가 있었다.

  이곳 루시타니아에서 최북단으로 올라가면 내 아내의 영지인 루리스탄이 있었다. 루리스탄 북쪽 산맥을 두르는 긴 장벽의 이름은 아드리안 성벽이었는데, 거기서 더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 오크의 근거지가 위치하고 있엇다. 2소대원들은 선전 목적으로 연대기와 소대기를 과시하며 도로를 따라 루리스탄까지 진군했다.
 
  그 후에는 산맥을 타고 올라가 곧장 오크 근거지로 이동했다. 워낙 요란하게 이동했기 때문에 오크들 입장에서도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돌창과 독침 등으로 무장한 오크 100여 마리가 응전하기 위해 나왔다. 2소대가 56명이었으니 그 2배가 넘는 숫자인 셈이었다. 오크들은 꾀를 내어 삼면에서 협공하고자 했다. 인간은 오크보다 육체적으로 약하니 어떻게든 근접해서 끝장내고자 하는 셈이었다. 물론 그런 움직임은 한발 앞서 침투한 예리코 분대에 의해 보고되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 오크들에게는 은밀 행동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이동 간에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 녀석들을 무리의 대장이 두들겨 패서 입을 다물게 했던 것이었다.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었지만 이때까지 내가 봐온 오크 중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예리코 분대의 저격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저격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2) 열 발 중에 단 한 발 만이 유효타를 냈고, 나머지 탄환은 오크의 단단한 몸통을 뚫지 못하고 찰과상 정도만 냈다. 하지만 예리코 분대의 정확한 사격이 해당 무리를 이끄는 놉(Nob *3)의 대갈통을 연달아 두 번 두들겼기 때문에, 화가 난 오크 대장은 본래의 작전을 잊어버리고 날뛰기 시작했다. 예리코 분대는 거리를 벌리면서 연달아 사격했다.

  두번째 사격은 더욱 성공적이었다. 두 마리의 오크가 쓰러졌고, 화가 나서 괴성을 지르는 놉의 앞니에 튕겨, 탄도가 바뀐 총알이 그대로 녹색 외계종의 입천장을 관통했다. 오른 쪽 안구를 통과해 뇌를 그대로 헤집은 탄환에는 스마일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예리코의 것이었다.

 "아주 아주 멋져. 이건 그냥 훈장감이군."

  예리코는 총몸에 입맞춤을 하고는 저격 위치를 옮겼다.

  분대장이 사라진 오크 무리는 명령을 내릴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면서 예리코 분대의 유도대로 끌려다니다가 전선을 이탈했다. 전투가 끝난 후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훈장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2소대는 압도적인 화력의 폭풍으로 적을 쓸어버리는데 성공했다. 여러 물리로 나뉜 오크들은 유탄 발사기와 미사일의 화염 속에 각개격파 당했다. 일부 오크들이 근접하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대부분 화염방사기의 프로메슘 광염 앞에 먼지도 남기지 못했다. 일부 분대는 백병전을 벌여야 했지만 오크들의 수가 충분히 줄어 있었기에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식은 죽 먹기로군요."

  데이지가 말했다. 그녀는 나와 함께, 키메라 장갑병력수송차량이 보내주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렇지도 않아. 세 배 정도의 적을 상대로 접근을 허용했다. 놈들의 계획대로 포위당했더라면 박살난 쪽은 2소대가 되었겠지."

  적어도 나의 판단으로는, 오크 무리의 총 지휘관은 매우 영리한 녀석임이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오크의 규율잡힌 모습과 전술적인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었다. 크게 우려할만한 일이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데이지 하사는 내가 지나친 생각을 한다고 여기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다소의 피해를 입더라도 적을 조기에 박살내는 것이 좋다고 결론 내렸다. 오크는 포자 번식을 한다. 한 마리만 살아있어도 몇주 후에는 군락이 하나 형성된다. 아무리 원시병기가 없더라도 머리를 쓸 줄 아는 지휘관과 오크의 번식력이 합해진다면 통제 불가능한 재난이 일어날 것이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험이었다. 나는 방침을 바꾸어 영주들에게 위기 상황임을 알리고 농노의 10%를 보내라고 명령했다. 징발된 농노들은 아케이의 1소대가 훈련시킬 것이었다. 또한 본대에는 군수지원을 요청했다. 병사들의 장비가 제때 도착하지 않는다면 일부 신병들은 냉병기를 들고 싸워야 할 것이었다.

  오크와의 정면 충돌을 예상했기 때문에, 2소대는 아드리안 성벽으로 후퇴했다. 2소대가 방어시설을 정비하는 동안 신병 훈련과 치안 유지를 담당할 1소대를 제외한 전 병력을 이끌고 나섰다. 놈들이 평범한 오크들과 사고 방식을 공유한다면, 패배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었다. 그 전에 2소대와 합류해야했다.

  벤돌란드 기계화 부대와 카디안 전차대는 산악지대에서 활동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적어도 방어전에서의 토치카 용도라면 큰 전력이 될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제대로 된 인사 한 통 남기지 못한 채로 허겁지겁 출발했다. 차량은 최대 속력으로 달렸고 차량으로 수송하지 못한 보병은 벤데타가 왕복하며 날랐다. 최대한 서둘렀지만, 마지막 병사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해가 저문지 오래였다.

  뜨겁ㄱ게 내리쬐던 햇볕이 사라지면서 지표면에 있던 수증가기 더 이상 증발하지 않고 대기로 퍼졌다. 낮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욱한 안개 덕에 한치 앞도 분간 할 수 없었다. 차량에 부착된 강력한 탐조등마저 오래된 손전등 수준의 빛 밖에 내지 못했다. 이런 날씨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데바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기습에는 최적의 조건이었고, 적의 습격을 예상하더라도 방어할 도리가 없었다.

  그날 밤은 부하들에게 경계의 필요성을 철저히 당부했다. 병사들 모두가 언제든 적에게 대응할 수 있도록 무기를 지닌 채로 선잠을 잤다. 경계조는 바싹 긴장해서 경계를 선 것은 당연하다.

 "각하께서도 슬슬 주무시는게 어떻습니까?"
 "나도… 자야지."

  괜시리 요새 곳곳을 순찰하는 나를 보다 못한 슘미츠 중위가 말했다. 그는 막 분대를 이끌고 야간 순찰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러프라이더 분대는 험지에서 정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에 다른 이들보다 더 무리시키고 있었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개굴개굴개굴. 안개 속에서 이름 모를 양서류의 울음소리가 울려왔다. 탐조등이 장착되어 빛을 토해내는, 안개 속의 아드리안 성벽의 성탑은 마치 눈에서 불을 뿜는 거인 같았다.

 "어쩐지… 뭔가 빠뜨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우일겁니다. 아무리 많아봐야 비무장의 오크들입니다. 고작 돌맹이를 들고 뭘 하겠습니까."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의 말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하였다. 슈미츠 중위를 배웅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오크의 공격을 막아내고, 화력을 동원해 단번에 궤멸 시킨다면 당분간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백병전 상황만 피한다면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요는 이 밤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관건이다. 오크 주둔지 근방에 매복시킨 레틀링들이 놈들의 이동을 감지해줄 것이다. 경계도 충분하다.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고 어쩌면 우리측의 일방적인 학살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겨우 잠에 들었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때는 해가 뜨고 안개가 옅어진 채였다.

 "습격은?"
 "없었습니다."

  소집된 장교들은 잠을 제대로 못잔 탓인지 피로해보였다.

 "오크는?"
 "아직 아무 징후가 없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틀링 쪽에서는 아무 연락 없나?"
 "예."
 "그렇다면 이쪽에서 먼저 친다. 슈미츠, 자네는 야간 순찰조와 함께 이곳을 지키며 휴식하게. 콜베르, 자네는 전차대를 이끌고 전속력으로 달려서 오크 주둔지를 박살내버리도록. 내가 보병을 이끌고 엄호하도록 하겠다. 오크들을 근접시키지 않게 조심하게."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2소대와 함께 거점 방어로 돌려진 슈미츠 중위는 불만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군말 없이 각자 위치로 향했다. 카디안 기갑 소대와 벤돌란드 기계화병대가 먼저 떠났다. 제 85 벤돌란드 연대 출신의 베테랑 기계화 보병들은 정글전 경험도 어느 정도 있었다. 전차들을 지원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었다. 나는 신병들을 인솔하여 뒤늦게 출발했다.

  1시간 쯤 지나자 멀리서 포성이 울렸다. 아주 익숙한, 리만 러스 전차의 전차포 소리었다. 리만 러스 전차는 늑대왕처럼 포효하는가 싶더니 몇 차례 포성이 들린 후에는 그만 소리가 그쳐버렸다. 총성 하나 없이 고요한 것이 조용하다 못해 못 마땅할 정도였다. 침묵 속에서 정적 같은 불안감이 소리 없이 음습해올 무렵, 통신병이 내게 수화기를 건냈다.

 "제 17 전차소대입니다."
 "콜베르 중위? 무슨 일이지"
「대장님,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텅 비었습니다.」

  복스캐스터(Vox-Caster)를 통해 들리는 콜베르의 목소리는 김빠진 맥주 마냥 미적지근했다.

 "뭐라고?"
「오크들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이 근방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습니다.」
 "거기서 대기하라. 현장 보존하고."
「알겠습니다.」

  서둘러 도착한 오크의 근거지는 버려져 있었다. 전차에 의해 불타고 허물어진 건물 안팍으로 조잡한 허수아비들이 세워져 있었다.

 "보시다시피 사방팔방으로 달아났습니다."

  콜베르 중위가 바닥을 걷어찼다. 그의 말대로 땅바닥에는 사방으로 흩어진 발자국들이 보였다. 고작 한차례의 조우전으로 무리가 와해됐을리는 없다. 다툼이 일어났다면 우리가 몰랐을 리가 없고. 허수아비를 세워 눈속임을 눈속임을 시도할 정도로 영악한 놈들이다. 뭔가 꿍꿍이 속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혼비백산 한 걸까요? 아주 맥이 풀리는군요."
 "긴장 풀지마라 중위. 놈들의 수는 아직 우리보다 많아."

  콜베르 중위는 베테랑 카디안 장교다. 오크들이 이 정도에 겁먹고 도망칠 리가 없다는 것을 모를리 없다.

 "그리고 놈들이 도주하건 말건 우리가 할 일은 정해져있다. 그렇지 않나?"
 "그 말씀대로입니다. 쫓아가서 다 죽여야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며칠 수색을 실시했음에도 아주 일부 오크 무리 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오크들은 여러 무리로 나뉘어 안개를 틈타 흩어진 듯 했다. 도시를 너무 오래 비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부대를 이끌고 돌아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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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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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철 씨뿌리기가 끝나고 축제 준비가  한창일 몌프티나가 나를 찾아왔다. 얇은 검정 드레스 한벌만 입고 지역 전통주를 들고있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매혹적이었다. 나는 정중하게 물었다.


 "불편한 점은 없소?"

 "네…. 폐하 덕분에 모든 것이 좋습니다."


  그녀는 만들어진 듯한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얼굴에 여전히 근심과 걱정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가 숨기기 원하는 듯하여 모른척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만하시오."

 "아닙니다. 모든게 정말로 편하고… 데이지 하사도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그녀가 세세한 점까지 신경 써주는 덕분에 불편한 점 하나 없습니다."


  데이지 그라프바인 하사는 카디안 44연대 출신의 부사관으로서, 부대의 몇 안되는 여성 간부였다. 나는 밝고 쾌활하다는 평을 듣는 그녀가 예프티나의 호위역 겸 말동무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17년 경력의 베테랑 군인에게는 모욕적일 수도 있는 부탁이었지만, 데이지 하사는 고맙게도 기꺼이 맡아주었다.


 "다만 그녀는 폐하에 대해선 잘 모르는 듯하여…"

 "나에 대해서? 그럴만도 하지. 데이지 하사는 본래 내 직속이 아니니까…….

 나야 특별한것 하나 없는 그저 늙은 군인일 뿐이지만, 궁금한 점이 있다면 알려주리다."

 "아닙니다……."

 "자, 뭐든 괜찮으니 사양하지 마시오. 뭐든 정직하게 대답하겠다고 맹세하지. 내 명예를 걸고."


  나는 나 자신에게 명예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그저 은하 변방에서 썩어가는 늙은이니까. 하지만 봉건 사회에서 이러한 맹세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녀는 치맛주름을 잡고 한참을 망설이더니, 내가 연이어 부추기자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에 대해? 나의 손님이고, 빌렘 1세의 딸이며 루리스탄의 어린 영주이지."

 "영주는 아니지만……."


  그녀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데바의 지역법은 여성의 작위 상속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분 간은 궁재(宮宰)가 임시로 영지를 관리를 하고 있지만, 그녀가 가문을 잇기 위해서는 모계 결혼을 통해 남자 아이를 낳아야 했다. 나로서는 가문이니 영지니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전통이라는 것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안타까워도 나로서는 어떻게 해줄 수 없다.


 "그게 아니라…"


  그녀는 쭈빗쭈빗, 웅얼거리며 망설이다가 고개숙였다.


 "제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으음? 그대는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하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텐데."

 "그렇다면, 그렇다면 왜 제 방에는 오시지 않으십니까? 저는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나는 한참만에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소르라치게 놀랐다.


 "당신은… 당신은 나의 손님이오. 노예가 아니란 말이오."

 "폐하는 제가 봉사하기에 마땅한 분입니다."


  그녀가 일어서서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길이 그녀 자신의 어깨를 스치자 비단 드레스가 물에 씻겨 내려가듯 사라졌다. 목덜미부터 아래로 흐르듯 내려가는 유려한 곡선과 긴 머릿결 사이로 언듯 보이는, 성야(聖夜)의 어두운 거리에 쌓이는 하얀 눈결과 같은 피부는, 아름다움을 넘어서 일종의 예술적 고귀함까지 느끼게 하였다. 나는 그녀의 눈 아래를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며 뒷걸음쳤다.


 "이러지마시오. 나는, 나는 그저 퇴물 군인일 뿐이오."

 "폐하의 성유물이 당신의 고귀함을 증명합니다. 황금 월계수가 황제 폐화의 권위를 상징한다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장교모의 황금 월계관도, 총독이라는 임시직도, 중대장 직위나 제국의 로드로서의 권위도 모두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니었다. 모두 잠깐 빌려온 것이고 모두 잠깐 맡겨진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걷어내고 나면 나라는 사람은 그저 늙은 군인,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퇴물 노병일 뿐이었다. 나는 내 어깨를 감싸는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진정하시오. 나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건… 제가 더럽기 때문인가요?"


  처음으로 그녀의 말투가 무너졌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다른 남성에게 욕보였기 때문에?"

 "아니야.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오."


  물이슬이 방울방울 맺혀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자 그녀를 품에 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뭔가 말하려 하더니, 결국에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끌어안고 토닥거렸다. 한참을 울고 내 옷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나서야 까까스로 진정한 그녀는 내 망토를 둘러 나신을 가렸다.


 "무슨 문제가 있다면 이야기해주시오. 사정을 모른다면 협력 할 수가 없으니." "그게… 아시다시피, 저희 가문에서 남은 이는 저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더렵혀진… 몸이고 아버지는 역적으로 처형당했어요."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 젖어있었다.


 "영지를 이을 사람이 없습니다. 가문을 이어야해요. 가능한 고귀한 사람의 자손으로…"

 "나는 딱히 고귀한 사람이 아니야. 나이도 많지."

 "폐하는 분쟁을 평화롭게 처리하셨고 기사도적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폐하의 자식이라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겁니다."

 "나는… 그대의 할아버지 뻘이오. 더 젊고 좋은 사람이 있을텐데……."

 "역적의 더럽혀진 딸을 받아주는 이는 드물겁니다."


  그녀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실례했습니다, 폐하. 이제 물러나보겠… 꺅?!"


  내 품에서 떠나려는 그녀를 나도 모르게 잡아당겼다. 나 조차도 놀란 일이었다.


 "폐하?"

 "나는… 그게…."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나를 그녀는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물에 씻은 구슬처럼 반짝였다.


 "말씀하세요."

 "나는 늙었고, 군인이오."


  그녀가 약간의 기대감을 담고 그렇게 말하자, 나도 모르게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내가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언제 죽을지도 몰라.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자신도 없어. 그래도 좋다면."

 "제게는 아이만 있으면 됩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그녀 자신을 가린 망토를 걷어냈다. 나는 옳지 않다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명분과 기회가 갖추어지자 얄팍한 인내심의 벽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니, 결혼합시다."

 "네…?"


  놀라는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 우리는 그해 황제탄신일 축제 때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가능한 많은 시간을 예프티나와 함께하려 애썼다. 그녀는 아무래도 마음의 짐을 덜어낸 덕분인지 예전보단 밝아졌다. 내가 간혹 조급한 기색을 보이는 그녀에게 "조급해하지 마시오. 밤은 오늘만이 아니니까."라고 할 때마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종군한 수 많은 행성들, 특히 내 고향인 코어-3의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지루할 법도 했지만, 고맙게도 그녀는 눈을 빛내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때때로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하고, 가끔씩 믿을 수 없다고 작은 투정을 부리면서도 그녀는 웃었다. 그녀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섬과 바다에 관한 이야기었다.


 "소금물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데바에도 강과 호수가 있잖소."

 "그건 소금물이 아니니까요. 소금호수에서도 생명이 살 수 있나요?"

 "그런 곳에서만 살 수 있는 생물도 많지. 방패만큼 단단한 껍질로 몸을 두른 거북이나, 유난히 사람을 잘 따르는 범돌고래라던가, 빛나는 무지개처럼 갖은 색을 가진 산호…"

 "무지개는 뭐죠?"

 "일곱가지 색을 가진, 반원형으로 빛나는 다리 같은 것이지. 바다에서 비가 내리면 간혹 보이곤 한다오. 사람은 아무리 쫓아가도 닿을 수 없지만 무지개에 닿은 사람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더군."

 "저도 언젠가 볼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우리는 종종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나의 군역이 끝나는 날, 그녀를 코어-3에 데려다주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전투병과라면 누구나 그렇듯 신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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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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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란이 허무하게 종식된 후에는 한동안 주둔지 공사와 행정 업무 양쪽으로 정신없이 바빴다. 주둔지 전용 발전 시설과 냉각 시설 건설이 완료되었을 때에는 한달이 훌쩍 지났고, 어느 정도 업무가 정리된 후에는 또 한달이 지나 있었다. 그 즈음에는 편의시설 설치도 끝날 무렵이었으므로 휴식을 겸해 상태를 살펴보기로 하였다.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간부 휴게소에는 하사부터 소대장까지 북적거렸는데, 어떻게 구했는지 술을 반입한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 곳에서 네 명의 간부들과 포커를 쳤다. 러프라이더 분대장인 콘스탄틴 슈미츠 중위는 조금 화가난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저는 백여명의 기병을 이끌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

 그는 술잔을 들고 투덜거렸다.

 "저의 고향에는 외계잡종들이 득실거렸는데, 저는 병사를 이끌고 그놈들을 유린하며 다녔습니다. 제 붉은 장식들은 잡종들의 피로 세탁하기 전까지는 본래 푸른 색이었단 말입니다. 그러다 외계인의 씨가 마르자 임페리얼 가드에 지원한 겁니다."
 "이런, 또 시작이군."

 예리코 중위가 나즈막히 혀를 찼다. 그는 레틀링치고는 건방진 인물이었다.

 "지금은 고작 십 수기만을 이끌고 있지만, 마자르 전역에서 중대 규모의 기병 돌격이 있었을 때 저도 그 곳에서 병사를 이끌었습니다. 비즈로에서 뾰족귀(*4) 놈들의 급습을 받았을 때 후미를 방어하며 반격의 돌파구를 찾아낸 것도 저였습니다. 엠브리엄 게이트에서도 대규모 돌격을 이끌었지요. 그때의 흙먼지가 그립군요. 그에 비하면 여기는 너무 평화롭습니다. 이런 촌구석에서 썩을 인간이 아니란 겁니다!"
 "빨리「가장 인상 깊었던 전투」에 대해 물어보십쇼. 테이블 부서지겠습니다."

 슈미츠 중위가 테이블을 두들기기 시작하자 예리코가 빠르게 속삭였다. 나는 기꺼이 그 말에 따랐다.

 "가장 인상적이라… 가장 인상적인 적수는 에스비잔 늪지대의 '진흙 괴물'이었군요. 수 많은 전투에 종군했지만 그런 특이한 경험은 없었습니다."

 슈미츠 중위는 눈을 빛내며 떠들었다.

 "그 주변 지대에서는 병사나 소분대의 실종이 잦았는데, 며칠 뒤에 목 없는 시체들이 발견 되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겁쟁이놈들이 진흙 괴물이라는게 살고 있다며 겁먹고 줄행량을 치기 시작하더랍니다. 제 고향인 라익스-알바도르프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은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제가 보다 못해서 '그래, 괴물이 있다면 내가 잡아오고 없다면 없는걸 증명해보마.'하고 장담하고는 소대를 이끌고 며칠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거의 숨도 쉬지 않고 오토캐논처럼 떠들었다.

 "그러다 괴물을 발견했다는거죠?"
 "그렇지?"

 예리코가 부추기자 그는 무릎을 쳤다.

 "이게, 어느날 진로를 바꿔서 정찰을 하는데, 오크란 높들이 진흙을 바르고 포복해서 숨어있더란 말이야. 보는 순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 오크치곤 제법 머리를 굴렸지만 내 눈썰미가 놈들보다 한 수 위었다는게 그 놈들의 불행이었지. 그래서 마냥 그대로 말을 달려서 밟아버렸어. 놈들이 백여명의 병사들을 죽였지만 결국 내 창 끝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거야."
 "오크가 위장이라고?"

 내가 말했다.

 "오크 코만도라고 불리는 놈들인데, 저도 두어번 잡아봤음죠."

 예리코가 웃었다.

 "아주 교활하고 야비한 놈들이죠. 아주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입니다. 잘못하다간 큰 피해가 나기 쉽상입니다. 대개는 높으신 분들이 교리만 믿고 경고를 무시하지만 말입니다. 아니, 뭐, 나으리 같이 아주 뛰어난 지휘관님들은 이런 친구를 시켜서 처리합니다만."

 예리코가 버나드 녹스 대위를 가리켰다.『스푸키보이』라는 별명을 가진, 병적으로 창백한 얼굴이 인상적인 과묵한 파일럿이었다. 그는 임페리얼 네이비에서 나의 부대로 파견된 이후로 입을 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랬다.

 "어떻게?"
 "간단하죠. 건쉽을 몰고와서…"

 예리코가 오른손으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흉내를 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쳤다.

 "콰광! 숨어있는 곳 통째로 날려버리는겁니다.
 …그게 여의치 않을때는 저 같이 총 꽤나 쓴다는 시정잡배가 투입됩니다만, 저 같은 레틀링, 하다못해 저기 사기꾼 제미니 같은 자격수라도 없는 상황이라면 아주 안좋슴죠."
 "대단한 이야기로군."

 위장하는 오크.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었다.

 "그래, 싸우는게 좋은 거라면 자네들에게 이런 변방은 아주 고역이겠구만."
 "말도 마십쇼."
 "그럼 다들 자원해서 온건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레틀링인 예리코도 그렇다는 것은 의외였다. 내 시선을 눈치채고 예리코가 손을 내저었다.

 "아, 왜 이러십니까. 총검 돌격을 하라면 아주 그냥 내빼겠습니다만. 소인네는 저격수 아닙니까. 멀리서 오리사냥하는데 겁먹을 필요 없음죠."
 "그래도 자원이라니, 대단하군."
 "중대장님은 안그러십니까?"
 "나는… 아닐세."
 "그럼 어쩌다 여기 계시는 겁니까?"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저,

 "글쎄, 적어도 이곳에 있길 바란 적은 한 번도 없다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


※콘스탄틴 슈미트 Konstantin Schmidt ...... 45 pts

WS

BS

S

T

W

I

A

Sv

Ld

4

3

3

3

1

3

3

4+/5++

8


*Type
Cavalry (Character)

*Wargear
Hunting Lance, Power Sword, Reflector Shild, Carapace Armour, Flag Grenade, Krak Grenade

*Special Rules
Sturborn, Skilled Rider, Knight and Honour

Knight and Honour : 콘스탄틴 슈미츠와 그의 분대는 모두 라스피스톨 대신 CCW(Close Combat Weapon)를 장비하며, 플랙 아머를 카라페이스 아머로 업그레이드 한다. 콘스탄틴 슈미츠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의 분대는 챌린지를 거절하거나 근접전 상황에서 후퇴할 수 없다.

 "포위 당했다고? 적들에게? 맙소사, 이런 맙소사! 알아서 죽으러 와주다니! 이렇게 쉬운 싸움이 또 어디있겠나! 제군들, 나를 따르라!"
 - 콘스탄틴 슈미츠, 비즈로 숲의 전투


 콘스탄틴 슈미츠는 제국의 페랄월드인 라익스-알트도르프 출신의 봉건 기사입니다. 그는 수 많은 외계종이 인류를 위협하는 라익스-알트도르프에서 수 많은 외계인들을 학살하였으며, 남김 없이 씨를 말렸습니다. 외계종을 최후의 한 마리까지 근절한 후, 그는 그대로 임페리얼 가드에 자원했으며 숱한 전투해서 승리했습니다. 그의 기사도는 궁지에 몰릴수록 빛이 날 것이며, 외계인들은 결코 그의 명예를 더럽힐 수 없을 것입니다.


※용감한 예리코 Brave Jerico ......15 pts

WS

BS

S

T

W

I

A

Sv

Ld

2

5

2

2

1

4

2

5+

8


*Type
Infantry (Character)

*Wargear
Flak Amour, Sniper rifle, laspistol

*Special Rules
Infiltrate, Stealth, Shoot Sharp and Scraper, Twinkle Badges

Twinkle Badges : 예리코가 품속에 고이 간직하고 다니는, 반짝반짝거리는 훈장들은 그의 컬렉션 중 일부입니다. 그는 언젠가 이 훈장들을 팔아서 한적한 곳에 농장을 살 생각을 할 때마다 용기가 셈솟습니다. 예리코는 모든 실패한 리더쉽 체크를 다시 할 수 있다. 

 "예? 아주 잘못들었슴다? 저기서 저격하란 말슴이심까? 지금 제가 사시눈깔 카타찬 새끼들처럼 보이십니까? 저 정도 거리라면 오그린도 스나이퍼가 되겠습니다만?"
 - 예리코, 400미터 거리에서 저격을 명령받은 후

 예리코는 문명행성이자 레틀링의 홈월드인 온스월드에서 징집된 레틀링 병사입니다. 깐죽이 본능을 천성적으로 타고난 그는 카타찬을 상대로 개기며 담력과 전투능력을 길렀습니다. 그 후의 깐죽거림의 대상은 소대장이 되었습니다. 항명과 장난의 적절한 경계선을 학습한 후, 깐죽거림은 그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리코가 아군의 앞에서만 용감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도주한 적이 없는 레틀링이라는 점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버나드 ' 스푸키보이' 녹스 Barnard 'Spooky Boy' Nox......30 pts

WS

BS

S

T

W

I

A

Sv

Ld

-

4

-

-

-

-

-

-

-


*Type
Vehicle (Flyer, Hover, Transport, Character)

*Special Rules
Grav Chute Insertion, Fighter Aces - Inspiring Presence, Crack Shot

 "명령만 내리십시오."
 - 버나드, 론V 게이트 진격전


 버나드는 카디아 출신의 창백한 얼굴의 병사입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다른 카디아인들과는 달리 무언가를 조종하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습니다. 그런 그가 임페리얼 네이비로 차출 된 것은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발키리 파일럿으로 훈련 받은 후, 그는 그 유명한 스투른 장군이 이끄는 제 412 카디안 연대의 카스르킨 전담 파일럿으로 배속되었습니다. 그는 제 412연대의 주력부대가 론V의 사이킥 게이트로 향하는 동안 미끼역할을 맡아 눈에 띄는 성과를 냈으며, 발키리와 벤데타를 갈아타며 뛰어난 활약을 보인 덕에 커미사리엣의 눈에 띄었습니다. 덕택에 론V 전역이 승리로 끝난 후에는 곧장 커미사리엣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버나드 녹스는 아주 뛰어난 파일럿이며, 특히나 탱크 헌터로서 명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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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크리트
,

 2주 후에, 나는 데바에 도착하였다. 데바는 매우 험준한 화산 행성으로 평균 기온이 36도나 되는 습한 곳이었다. 행성 전체를 덮은 옅은 안개는 항시 고온을 띄고, 시야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골칫거리였다.

 그 날이라고 딱히 다를 것은 없어서, 수송선의 해치가 열리자마자 연기가 깔리듯 자욱한 안개알들이 스멀스멀 출입구를 타고 올라왔다.

 "끔찍하게 끈적거리는구만."

 짐을 내리느라 분주한 병사들을 내버려두고, 아케이 벨로스 바이트베버 준위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입대동기이자 평생에 걸친 친우였으며 내 수족과도 같은 믿을만한 장교였다. 그런 그가 아련한 눈을 하고 말했다.

 "고향의 여름 생각이 나는군. 밤이면 이렇게 해무가 끼곤 했는데……."
 "언젠간 돌아갈 수 있을거야."
 "그렇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동향 출신인 만큼 내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았지만, 바닷가 출신인 그는 더욱 각별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병사들 앞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화제를 돌렸다.

 "자네, 행성에 관해 브리핑한 내용은 기억하고 있나?"
 "어… 기온이 염병 높은 화상 행성이고… 물이 풍부한 행성이지만 대부분 지하수와 안개의 형태로 분포하는데… 뜨거운 안개가 사람을 사우나에 처넣은 돼지국밥으로 만들어서…"
 "체내 수분의 배출을 가속화해서."
 "그게 그거 아닌가. 아무튼 그래서, 외부에서 3~4시간 활동한 후에는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적대환경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부대 내 장비 보유량이 얼마 없으므로 소수 인원만 파견한다. 뭐 그런 내용아니었나?"
 "뭐, 그걸 물어본 건 아니지만 정답이야. 그런데, 그렇게 잘 알면서 자네 장비는 어디로 갔나?"
 "안그래도 더워서 입을 생각이었어."

 내 핀잔에 아케이는 투덜거리며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물어본 것은 행성의 문화에 관한 것이었네."
 "그냥 요약하면 낙후행성이라는 것 아닌가? 그런건 왜?"
 "복습을 겸해서 말이야. 이제 나는 행성 원로들을 만나러 가볼 생각이니, 자네는 병사들을 관리하고 있게."

 헬멧 안에서 그의 눈동자가 빛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케이가 유쾌하게 말했다.

 "각하. 수행원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자네는 최고선임 장교잖아."
 "내가 없어도 알아서 할 일들 다 하는 녀석들이야. 나 말고도 부사관들이 있어."
 "명령이라면?"
 "명령대로 각하를 수행할 녀석들을 뽑아오겠습니다!"

 아케이가 장난스럽게 경례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숨 쉬었다.

 

 "자네, 보나마나 행성의 문화에 대해서는 듣지도 않았나본데."
 "상관 없어. 어차피 자네 뒤에 서 있기만 할텐데 뭘. 나는 총독 환영 파티에서 케이크나 집어먹으면 되지."
 "나는 상관 있는데다가, 환영 파티 같은건 없어."

 나는 키메라 장갑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아케이를 붙잡고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데바에는 제국의 직접적 지배를 받는 식민 이주민들인 루시타이나인들과 유목농경 생활을 하는 아인간(*1)족인 라서르탄(Lacertan), 두 부류의 인종이 존재하고 있다. 루시타니아인들은 총독의 지배를 받는 행성수도 루시타니아를 중심으로 12개의 성채 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고, 각각 세인(Thane)이라 불리는 봉건영주의 지배를 받는다. 현재 데바에서 일어나는 내전은 이 12개 도시가 편을 갈라 싸우는 일이며, 라서르탄과는 관련이 없다. 라서르탄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나의 중대장으로서의 첫 목표는 하나, 충성파 영주들의 만나 행성의 통치권을 인수하고 전황을 파악하며, 둘, 시민들을 징집해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고, 셋, 가능한 빠른 시일내로 내전을 진압하는 것이다. 특히나 가장 중요한 것은 추가 병력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이름만 중대일 뿐, 8개 분대 5개 중화기반이라는 소대 구성을 그대로 유지한 보병진으로는 중대급 임무 수행에 지장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을 보조할 예비대 구성이 가장 시급했다.

 그런 나의 취지를 충성파 영주들에게 전달했을 때, 그들은 원탁에 앉아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의 대표역인 가이우스 실리우스가 나서서 말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Your Majesty), 지난 습격으로 인해 토지가 황폐해졌을 뿐만 아니라 식량 창고를 약탈 당했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노동력을 징발해서 이번 콩 수확시기를 놓치게 된다면 극심한 식량난이 일어날겁니다."

 지난 습격이란 총독이 살해당한 전투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충병력이 필요하다. 전쟁 중인데도 최소한의 방어병력도 없더군."

 오면서 살펴본 PDF(*2)는 지치고 맥이 빠진데다 숫자조차 부족했다. 수와 질 양쪽이 모두 부족하다면 가장 먼저 채울 수 있는 것은 머릿수이다.

 "그것은 자유민들을 해산했기 때문으로… 수확기만 무사히 넘긴다면 병력은 다시 보충할 수 있습니다."

 사전 브리핑에 따르면, 이 행성은 봉건 행성인 만큼 조세와 군역에도 봉건제가 적용되고 있었다. 영주의 아래에는 자유민인 체얼(Ceorl)과 최하층 계급인 농노(Serf)가 존재한다. 농노에게는 많은 제약과 인권적이 따르지만 대신 군역이 면제된다. 재산 소유가 인정되는 자유민 만이 자경(自警)과 병역의 의무를 가진다. 내 지식이 틀리지 않았다면 반란군 측의 자유민도 귀향했을 것이므로 양쪽의 병력이 모두 줄었을 것이다. 수확기가 끝날때까지 대치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떠련지. 저쪽은 군량에 여유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 점만 믿고 자유민들을 묶어두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쪽 병력이 줄어든 이때는 총공세를 펼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이기도 하다.

 잠깐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곤란하군.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로 반란을 진압해야한다."

 혼란은 짧을 수록 좋은 법이다. 무엇보다 적에게 전열을 재정비 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전쟁이 장기화 될 가능성도 있고, 특히나 적이 충분한 식량을 비축한 후 유격전 형태로 나올 경우에는 한정된 병력만을 가진 우리 중대로서는 대응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상황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군사적 무능함에 따른 처벌을 받을 것이고 행성 주민들은 게릴라 색출을 위해 무차별로 청소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상황을 너무 질질 끌게 된다면 처형당하는 것은 반란분자가 아니라 자네들이 될거야."
 "그런 말씀을 하셔도 먹을 것이 없어서는 싸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이들이 모두 수긍하고 나섰다.

 "그럼… 영주들이 군비를 부담해줄 수는 없는가? 원하는 조건을 걸겠다."
 "불가능합니다. 저희들에게도 남은 양식이 없으니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난 분명 '내전이 거의 진압되었다'라는 보고를 받았는데, 그건 반란군이 이기고 있단 말이었나?"
 "어떤 훌륭하신 총독님께서 반란 방지를 명목으로 저희의 군량미도 한거번에 관리하셨기 때문에."

 이들은 전임 총독에 대한 반감을 전혀 숨기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닙니다. 폐하께서 군공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내전은 금방 종결될겁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만한게 없지. 이야기해보게."

 가이우스 실베루스의 이야기는 반란 발발의 계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전임 총독인 루시우스 타르퀸이 루리스탄의 영주, 빌렘 1세의 딸 예프티나를 욕보인 것으로 빌렘 1세가 봉기하자, 평소 비리와 폭정에 불만이 쌓여 있던 다른 영주들과 농민들이 합류했다. 그들의 입장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반란 만은 안된다는 영주들은 총독의 소집령에 응했고 양측의 충돌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쪽 편은 반란의 명분인 총독이 사망했고, 저쪽 편은 반란의 구심점인 빌렘 1세와 그의 아들들이 사망함으로서 내전은 지지부진하게 끌게 되었다. 하지만 신임 총독이 이들을 사면한 뒤 선정을 베푼다면 이 한심한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거란 이야기었다.

 "마지막으로 이는 저희 모두의 의견임을 알려드립니다."

 실베루스의 마지막 덧붙임에, 나의 뒤에서 부동자세로 침묵하던 아케이가 발끈했다.

 "이 자식들이! 어디서 협박질이야!"
 "협박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저들에게는 심정적으로나마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반역자 새끼들이…"
 "아케이, 됐네."

 총을 뽑으려는 아케이를 제지했다.

 "자네들, 불만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군?"
 "선왕께서 워낙… 탐욕스러운 분이셨으므로."
 "흠…. 선택의 여지를 안 줄 생각인가?"

 실베루스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반쯤은 도박인 셈이다. 로드 커미사르의 모든 권한을 주겠다는 언약을 받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대리. 어디까지 자율권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무능한이라고는 하나 총독은 제국 질서의 상징이다. 총독에 대한 반역은 곧 제국에 대한 반역인 것이다. 그냥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너무 크게 발전했다.

 "적어도 반란군의 항복이라는 형식은 갖춰야 할 걸세. 사면령을 발표한다고 한들, 저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내려놓고 용서를 빌 수 있겠나?"
 "그 점은 문제 없습니다."

 실베루스가 단언했다.

 "제국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반역자에 대한 엄벌이 반드시 필요한데도?"
 "이미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그 말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이 반란은 연극인 셈이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국의 영토는 넓고, 때론 데바처럼 제국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지역도 있다. 이렇게 중요도가 떨어지는 변경 지역에는 제국 직할 관리가 파견될 때까지는 몇십년이 걸릴지 모른다. 제국에서 조사관을 파견해서 비리를 수사한다는 방법도 있지만… 일개 소대장이 총독 대리로서 파견될 정도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행성까지 인퀴지터 혹은 그에 준하는 조사관이 파견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탐관오리의 폭정을 견디다 견디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게 된 행성민들은 자신들의 힘을 총독을 축출할 계획을 세운다. 희생 역을 맡은 반란군 지도자들이 민중을 이끌어 총독을 제거하고, 충성파 역을 맡은 이들은 형식적으로 이들과 대립하며 충성을 보인다. 총독이 사라진 후, 반란군은 충성파에게 진압을 당하고. 반란군 지도자들이 처형이라는 형식으로 산제물이 되면 행성은 다시금 제국 영토로서 평화를 되찾는다.

 굳이 그들을 진정 처형할 필요도 없다. 빠른 시일 내에 반란이 진압되고, 누구의 시체에든『반란군 지도자』라는 칭호를 붙여 증거로 제시하기만 한다면 제국의 입장으로서도 굳이 이런 사소한 분쟁 따위에 깊이 관여할 일이 없다. 오히려, 신속하게 처리되기만 한다면, 그리고 십일조만 꼬박꼬박 납부한다면야 이 정도 일은 덮어둬도 좋을 정도다. 인류의 생사를 걸고 끝 없는 투쟁을 벌이는 시대에『누가 총독이냐』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새끼 손가락의 손톱이 잘려나가는 정도 밖에 안되는 일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런 형식의 정권 교체는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다.

 다만, 괜히 휘말려서 반쯤 어거지로 공범이 되어야 하는 나로서는 황당할 따름이다. 아마도 자기들 딴에는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상황을 마무리 한다는게 내가 너무 일찍 도착한 나머지 일이 꼬인 것이겠지만. 우리 연대가 우연히 근처에 있었다는 것이 서로에게 불행이 된 셈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호전적인 총독이 부임했다면 도대체 어쩔번 했나.

 "좋다. 반란군에 공문을 보내라. 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로는 반란군은 모두 해산하고 반란에 참여한 영주들은 비무장으로 내게 찾아와 충성을 맹세해야하며, 둘째로 반란 수괴인 빌렘 1세의 시체는 화형한 후 그 유골을 제국에 보내야한다. 이 조건이 지켜진다면 그대들의 뜻에 따라 자비를 베풀도록 하겠다."
 "폐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실베루스는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안도의 한숨을 쉰 것 같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일곱명의 사람이 찾아왔다. 한 사람은 여성이었고 여섯 명은 남성이었다. 모두 반란 영주였다. 두 명의 남성만이 늙었고 나머지는 모두 젊거나 어렸다. 심지어 몇 명은 소년이었다.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새 군주를 뵙습니다."
 "누가 대표인가?"

 검은 갑옷의 늙은이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저, 헤링겐의 영주 에드버트가 주군에게 자비를 구걸하러 왔습니다."
 "그대가 대표인가? 빌렘 1세의 뒤를 이은?"
 "그의 외할아버지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영주와 그 후계자들이 죽었습니다. 저 또한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불쌍한 늙은이입니다."

 그는 고개를 조아리며 간청했다.

 "저희 일곱 영지에는 후계가 없습니다. 어떤 영지는 새 영주가 성년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루리스탄은 영주와 그 자식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데,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저희가 가문만은 이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전 총독은 무능하고 탐욕스러웠지만, 결투사(*3)로서의 재능 만큼은 상당했던 것 같다. 총독 관저로 습격해온 블렘 1세를 결투로 쓰러뜨리고, 격분해 달려든 그의 아들들마저 쓰러뜨린 후 세 명의 영주를 더 베고 힘이 다해 죽었다고 한다.

 그들 모두가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

 "충성의 증표로 보낼 볼모조차 없습니다. 대신이라고 하긴 뻔뻔스럽지만, 빌렘 1세의 하나뿐인 혈육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뿐인 여성이 걸어나왔다. 그녀는 칠흙 같은 검은 생머리와 따뜻한 우윳빛 피부를 가진 여자였다. 흑옥 같은 맑은 눈동자에 슬픔을 가듬 담고서, 허리까지 늘어뜨린 머릿결은 발걸음에 맞춰 흔들거렸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예프티나라고 합니다."

 나는 그녀의 붉은 입술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땔 수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그녀에게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나는 넋을 놓을 뻔 했지만 이어진 에드버트의 말이 나를 제정신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좋은 여성입니다. 필시 폐하를 즐겁게 해드리겠지요."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숙녀일텐데. 그대들이 지켜야 할 고귀한 여성이 아닌가?"
 "이미 한 번 더럽혀진 여자입니다."
 "목숨을 구걸하는 비겁자의 입에 걸맞는 더러운 이야기로군."

 아주 더럽기 짝이없는, 구역질이 나는 이야기였다. 이 여자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일어난 이들이 이제 와서는 제 편의에 따라 한 여자를 희생시키려 하고 있었다. 아주 대단한 기사도였다. 이들이 또 무엇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휘둘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말했다.

 "방금 그대의 말은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 하지만 단 한 번 뿐이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입을 잘못 놀린다면 그에 걸맞는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야기는 끝이다. 볼모는 없다. 그 누구도 처형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포로도 받지 않겠다. 각자의 영지로 돌아가서 이때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대들의 의무를 다하라."
 "하지만 폐하, 이것은 그녀가 자청한 일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불복하는건가? 나는 볼모도 처벌도 없다고 했을텐데."
 "그렇다면 폐하."

 예프티나가 은장도를 뽑아들었다.

 "제게 남은 일은 스스로 죽는 것 뿐이로군요."
 "폐하, 이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의무 입니다."

 나로서는 봉건적 명예와 더럽혀진 처녀성의 관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허세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만의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해도 여성이 자결하도록 나둔다는 것이 나의 양심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모가 아니라 손님이라는 입장이라도 괜찮다면… 받아들이겠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1) 아인간 : Abhuman. 레틀링, 오그린과 같은, 인간으로서 공인된 돌연변이들을 말한다. 인류제국의 신민으로서 존재하는 아인간들에는 레틀링, 오그린, 비스트맨, 트로스, 나이트사이더 등이 가장 널리 알려진 종족이다.

*2) PDF : Planetary Defence Force. 행성 총독의 직할로서, 총독에 의해 모집되고 훈련되어 지휘 받는 군대를 뜻한다. PDF의 훈련도는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례로, 카디아 내무위병단(Cadian Interior Guard)은 아바돈의

*3) 결투사 : 과학의 발달, 특히 방어구의 발달은 특이한 전쟁 양상을 가져왔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근접병기와 근접공격기술의 발달이다. 총과 같은 투사무기의 발달이 각종 보호장비를 뚫지 못하게 됨으로서 지상전에서는 잦은 근접전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다양한 근접병기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병사들의 사기를 고양하거나 적의 사기를 낮추려는 목적에서든, 자신 스스로의 명예 때문에서든, 아니면 전술 혹은 전략적인 이유에서, 전장에서는 분대급 이상의 지휘관들 사이의 결투(Challenge)라는 것이 자주 행해진다.

 결투에서 승리하여 적 장교의 수급을 취했다면 자연히 아군의 사기는 높아지고 적병의 사기는 낮아진다. 또한 해당 전술단위(Unit)의 지휘관이 사라지기 때문에 적에게 지휘체계의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다. 반대로 적이 결투를 거부하고 일반 병졸인척 부하의 사이로 숨게 된다면, 병졸인척하기 위해 부하를 지휘할 수 없으므로 해당 장교는 그 전투에 한 해 지도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진다. 얼핏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이런 합리적인 이유에서 외계인 사이에서든 인류 제국에서든 전장에서의 결투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4) 뾰족귀 : 엘다가 인간을 원숭이라는 뜻을 가진 몬카이 Mon-keigh라고 부르는 것처럼, 인간 사회에도 엘다를 경멸하는 칭호가 있다. 대개는 강한 경멸을 담아 외계종 Xenos라고 하지만 때떄로 뾰족귀 Keen Ears, 째진눈 Chink, 사기꾼 Liar, 앙상한 Scrawny, 비열한 Sneaker, 뚜쟁이 Poncy 등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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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주석은 창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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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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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네는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나? 내가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 말 대로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네들 또한 그렇지 않은가. 시기적절하게 도착하여 살아남았으니 말이야.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가는 듯 하군. 그렇다면 잘 듣게. 나, 가이영 세이 원딩턴이 이야기 해줌세.

 나는 '코리-3'이라고 명명된, 우리 스스로는 '코리'라고 부르는 행성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행성 대부분이 물로 덮힌 곳이며, 성층권이 폭발성 유독 대기층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행성이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인류 제국에서는 코리-3을 거주불가능한 가스행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 코리 행성인들은 인류 제국과는 오랜시간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고. 우리 스스로는 폭발성 대기를 통과할 기술력이 없었고, 외부에서는 코리가 문명 행성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지 않아 깨졌다. 행성 주민들은 남부 연합과 북부 동맹으로 나뉘어 정치적 견제를 하고 있었는데, 북부 동맹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사이커로 각성한 것이었다. 미숙한 사이커의 정치적 탐욕과 야심이 화를 부추겼다. 그는 악마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긴장의 끈을 놓을 때 마다 워프의 악마들이 그를 유혹했다. 악마가 보여주는 환상은 현실과 구분할 수 없었고, 눈을 감을 때마다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신민들의 목소리는 감미로운 벌꿀주와 같았다. 매일밤 그의 왕국과 명예와 영생을 약속하는 목소리. 결국 그는 목소리에 굴복하고 말았다. 하긴,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겠다는데 혹하지 않을 자가 얼마나 되겠나?

 전쟁이 일어났다. 북부 동맹의 대다수가 타락하고 말았다. 불사자의 군대가 남진해오는 동안, 너글의 역병이 행성 전역에 퍼졌다. 많은 이들이 쇠약해졌고 전염병을 이겨내지 못한 이들은 좀비로서 부활했다. 많은 이들이 움직이는 시신에게서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 나 또한 인면창으로 괴로워하던 나의 여동생을 내 손으로 두 번이나 죽여야했다. 괴로운 일이었다. 이내, 가족을 잃은 많은 이들이 군대에 자원했다. 27살이었던 나 또한 그들 중 한명이었고, 유격부대에 배속되었다.

 희망 없는 싸움이었다. 전의 만큼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지만 행성 최고의 소총이 오토건*1) 만큼의 화력도 안 나오는 조잡한 총기었다. 낙후된 기술력 때문이었다. 적들은 사지를 분쇄하지 않으면 다시 일어났다. 죽은 자들은 적이되어 다시 일어났다. 우리의 병기로는 악마의 무리에 대적하는 것이 힘들었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카오스 마린들은, 단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오십 배가 넘는 병력이 필요했다. 용감한 이들이 때로는 목숨까지 내놓은 육탄 돌격까지하며 지연전을 펼쳤지만 전투력의 열세와 지휘 체계의 결함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항다운 저항도 펼치지 못한 채로, 단 3개월 만에 단 3개의 도시를 제외한 모든 구역을 잃었다. 구석에 몰린 것이었다. 최후의 전투였다. 더 이상 몰려날 곳도 없는 곳에서 15일 간의 절망적인 방어전 끝에, 패배가 확정된 순간, 하늘에서 기적이 나타났다. 자네들, 스페이스 마린이 내려온거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카오스 세력의 활동을 감지한 이단심문소가 병력을 급파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그 순간 만큼은 모든 이가 신의 기적으로 밖에 느끼지 못했다. 이 때 살아남은 이들이 황제교로 개종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겠나?

 스페이스 마린 챕터와 임페리얼 가드로 구성된 1개 군단이 급파되어 전쟁을 종결시켰다. 제국제 무기로 재무장한 코리인의 군대도 그들을 보조했다.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2년에 걸친 전쟁이었고 행성의 70%가 파괴되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급격히 퍼진 황제숭배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행성 주민들의 만장일치 속에서 내 고향은 제국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코리인들의 환영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우리는 순수성을 의심받은 것이었다. 막 편입된 행성인데다 카오스 신앙이 자생한 행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행성의 '정화'는 다행히도 피해갔다. 하지만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행성 전역이 초토화되었기에, 세금 대신 십일조*2)로서 편성된 18개 연대 14만 7천명은 임페리얼 가드로서 재훈련 받은 뒤 각각 이단심문소와 커미사리에트*3)에 배속되었다. 코리 행성의 PDF또한 중무장한 타지역 출신 연대와 함께 배속되었다. 표면상의 이유는 '신생 연대이기에 노련한 부대와 협동작전을 통해 전투경험을 쌓는다'는 것이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반란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낌새가 안좋으면 그대로 쓸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래. 순수성과 충성심을 시험받게 된 것이었지. 그건 나의 부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소속된 제 3983 특수강습유격대는 다른 부대와 합쳐져 제 14 코리안 연대로 재편되었다. 지휘관은 커미사리에트에서 파견된 로드 커미사르 제네럴 안드레아 각하가 맡았다. 그는 강인하고 완고한 노병이었지만 100년이 넘게 복무한 우수한 군인이었다. 몇년 후에야 알았지만 커미사르로서도 보기 드물게 유연하고 관대한 장교였다. 나는 그의 휘하에서 40년을 근무하였다. 타우, 엘다, 티라니드, 오크와 같은 외계인들과 대적했고 가끔씩은 해적, 반란군, 이단자와 같은 비정규군도 상대했다. 때론 이단심문소나 시스터들과 충돌하여 아군끼리 총을 겨누기도 했지. 긴 시간이었다. 정말로ㅡ 긴 시간이었지… 순수성을 증명하기 전까지 제대는 허용되지 않았어. 내가 병사에서 분대장으로, 분대장에서 선임소대장으로 진급하는 긴 시간 동안, 스스로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네. 순수성의 증명! 푸른 행성. 물의 도시. 사시사철 온난하며… 나의 가족이 기다리는 그곳. 아름다운 나의 고향! 그 곳을 다시 한 번 더 볼 수만 있다면…….

 어느날이었다. 로드 커미사르가 나를 불렀다. 그는 수명연장수술을 받은 귀족 특유의 굵은 목소리로 운을 띄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네."

 나는 잔뜩 긴장했다. 내 소대의 군기문란이 주제가 아니길 바라면서 말이다. 죽을때 죽더라도 총살 같은 불명예는 사양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말은 나의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데바라는 행성에서 PDF의 일부가 반란을 일으켰네. 행성은 지금 내전 상태라는군."

 안드레아가 말했다.

"반란은 거의 진압되었지만 피해가 작지 않아. 그리고 데바 행성에 지원을 보낼 수 있는 부대는 우리 뿐이고."
"그러면."

 내가 말했다.

"현재 우리 부대의 작전 구역은 어떻게 됩니까? 후속 부대에 넘겨줍니까?"
"아니. 자네가 간다."
"그건…?"
"자네는 이제부터 나의 대리인이다. 자네의 부하들과 함께 증원군으로서 데바로 가도록 하게."

 나는 어리둥절해서 커미사르를 바라보았다.

"각하. 저는 고작 소대장입니다."
"경험 많은 소대장이지."

 로드 커미사르는 나에게 데이터시트*4)를 넘겼다. 데이터시트에는 데바가 적대적 환경 장비*5) 없이는 작전 수행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라던가, 중세 수준의 문명을 가진 낙후된 행성이라는 것 등이 적혀있었다.

 내가 데이터시트를 살펴보는 동안 안드레아가 말을 이었다.

"데바의 총독이 사망하였다. 새 총독이 임명되기 전까지는 자네가 군사 업무와 행정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할거야. 그런 것도 있으니 자네를 1계급 진급시켜주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내가 부대에서 몇 안되는 학위보유자였던 것이다. 더구나 행정학 계통은 나 뿐이었다.

"질문 있나?"
"제게 특별한 지시사항이나, 총독 대리로서의 방침 같은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정확히는 총독 대리가 아니라."

 커미사르 제네럴이 특유의 장교모를 벗었다. 월계관 장식이 황금 돋을 새김 된 특별한 장교모였다. 장교모 아래로 드러난, 그 얼굴의 크고 작은 흉터와 바이오닉 임플란트*6)가 지난 200년 간의 상흔을 증언하고 있었다.

"나의 대리로 가는거야. 자네에게 커미사르 제네럴의 모든 권한을 위임하겠네. 행성의 충성심을 고취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을 해도 좋네. 내 권한 안의 일이라면 뭐든. 이 보구*7)는 그 증표일세."

 그는 그의 모자를 나에게 씌웠다.

"이봐, 가이. 자네는 내 목숨을 몇번이나 구해줬지. 그리고 자네의 능력을 이미 여러번 증명했네. 자네는 내가 가장 눈여겨보는 장교 중 한 명이야."
"각하께서도 몇 번이나 제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난, 자네가 대위임에도 소대장이라는 것이 항상 마음이 걸렸다네. 이제야 자네에게 걸맞는 자리를 주는군."
"감사합니다."

 안드레아가 장교들을 격려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그날 따라 그의 격려가 무겁게 느껴졌다.

"잘 해낼 수 있을거라 믿네."

 나는 경례로 대답했다.
 그날 부로 나의 소대는 카디안의 리만러스와 베인 울프를 포함한 전차소대, 벤데타 편대와 함께 독립중대인 제 702 분견대로 재편되었다.



*1)오토건과 현대식 소총 : 오토건은 4만년대의 가장 흔하고 낙후된 무기지만, 사람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현대식 소총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2)십일조 : 십일조가 곧 행성에 물리는 세금이다. 세금과 다른 의미로 쓰인 말이 아니다.

*3)커미사리에트 : 커미사르를 통괄하는 조직. 임페리얼 가드와는 명령체계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하이고딕으로는 오피시오 프레펙투스라고 한다.

*4)데이터시트 : 관련 자료라는 뜻이지만, 인류 제국에서는 문서 읽기 전용 장비를 의미하기도 한다. PDA나 타블렛 같은 것.

*5)적대적 환경 장비 : Hostile Environment Gear. Hostile Environment Equipment라고도 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지역에서 제국군 장병들의 방호력과 생존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착용하는 장비들이다.

*6)바이오닉 임플란트 : 신체부위의 기계대체품. 단순히 신체를 대체하는 것 뿐만 아니라 특수한 기능이 포함되어 있거나 해당 부위를 강화시켜주기도 한다.

*7)보구 : 정복의 보구 Heirlooms of Conquest라고 불리는, 임페리얼 가드의 유물들이다. 각각 아주 귀중한 능력을 가진 특수한 보물들로서 실전된 기술로 만들어졌거나 인류제국의 기술을 집대성한 무기들이다. 로드 커미사르 안드레아의 보구는 통솔의 월계관 The Laurels of Command 이라는 것으로, 착용자가 내리는 명령에 거의 절대복종하게 만드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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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산맥 너머의 깊은 골짜기. 안개 낀 대지 위로 재가 섞인 검은 웅덩이가 곳곳에 고여있고, 요새의 폐허 군데군데에는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매캐한 지옥의 냄새는 배고픈 들개무리조차 쫓아버렸고 겁먹은 까마귀들은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패배한, 상처입어 쓰러진 용사들의 시체는, 배신당한 희망을 눈동자에 가득 담았고. 다시오지 않을 내일, 그리고 부서진 무구와 병기의 잔해 사이로 쓰라린 패배의 상흔을 가슴 깊이 새긴 늙은 군인 한 명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때로는 그 옅은 존재감마저 잃으면서, 그저 앉아있을 뿐이었다.

 

어디선가 세 명의 거인들이 나타났다. 황제의 위대한 전령, 인간-신의 아들들이며 인류의 수호자이자 죽음의 천사인 그들은 자신들이 선발대로서 정찰 임무를 받고 왔노라 밝히고, 운 좋은 가드맨에게 이 지역에 주둔해 있어 마땅할 방위 연대의 존재에 대해 물었다.

 

운 좋은 가드맨. 그 말을 들은 노병의 눈에 일순 뜨거운 무언가가 스쳐갔다. 노인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담담하게, 새로운 전설이 될지도 모르는, 은하 절반을 가로질러 변방까지 온 황제의 종복들과 최후의 쌍두 독수리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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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써님 블써님"


 지지배처럼 찍찍거리는 소리가 블러드써스터의 단잠을 방해했습니다.


"블써님. 모두의 귀염둥이 퓨리에얌."


 블러드써스터는 눈을 게슴츠레 떠, 날파리처럼 날아다니는 퓨리를 한번 쳐다본 후. 다시 잠에 들었습니다.


 "물질계에서 누가 코르라쓰에 제물을 바쳤대얌. 블써님 출장다녀오셔야 한대얌. 늦잠자시면 혼나얌."

 "시끄럽다!"


 블러드써스터는 귀찮게 구는 퓨리를 왼손으로 뭉게버렸습니다.


 "더러운 인간놈들! 토요일에는 늦잠 좀 자자! 맨날 휴일에만 부르고 말이야!"


 블러드써스터는 분노를 담아 물질계와 워프세계 사이의 공간을 찢고 전장으로 날아갑니다. 날개를 한 번 펄럭이자 풍압에 가드맨들이 넘어집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인간들이 개미새끼처럼 보입니다.


 "으하하하하하! 바로 내가! 이 몸이! 재앙 그 자체!! 블러드써스터님이시다!! 하하하하하하하!"


 자기 PR을 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영업사원의 하루는 오늘도 힘듭니다.

 순간 블러드써스터의 등골이 싸늘해집니다.


 '어... 나 고혈압 약 챙겨왔던가?'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지병인 고혈압 때문입니다.


 "억……."


 블러드써스터는 그대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칩니다. 뇌출혈이 일어난 듯 합니다. 흐려지는 시야 밖으로 라스건을 들고 다가오는 가드맨들이 보입니다. 119를… 이라고 채 말하지 못한채, 블러드써스터는 잠들듯이 눈을 감았습니다.

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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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한번 천천히, 수 세기간의 침수로부터 그의 상념이 깨어났다. 석관에 연결된 튜브로 부터 화학자극제가 주입되어 스테이시스 슬립의 여파로 인한 졸음을 씻어내었다. 서보가 동작하는 소리, 장갑을 두른 몸체가 쉬던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의 시야를 가득채운 빛의 갑작스러운 폭발이 정화되며 친숙한 장면이 나타날 것임을 예고했다. 아포세카리와 테크마린들이 그의 앞에 서서, 데이타슬레이트와 각종 장비들을 손에 쥐었고, 그 가운데 백발의 한 마린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아머에 있는 표식은 그가 브라더 캡틴이라는 것을 알렸다. 이 모든 것이 꽤나 이상해 보였지만, 그는 뭐가 이상한지 드레드클러로 딱 잡아 말할 수 없었다. 상관없다. 때가 된 듯 하니.

 

  "누가 이 몸을 깨웠는가?" 드레드넛의 스피커를 통해 그의 으르릉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전쟁의 시간인가." 그가 희망사항을 덧붙였다.

  "물론 전쟁의 시간입니다. 강력한 비요른이시여," 캡틴이 대답했다. "우리의 적과 싸우기 위해 당신을 깨웠습니다!"


  "예상대로. 절대 전쟁 때문 일리는 - 엉? 뭐라고?"


  아래턱을 맞은 듯한 침묵이 방 전체에 퍼졌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브라더 캡틴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예, 고대의 존재시여, 전쟁의 때가 왔습니다. 그게 무-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비요른은 잠깐 동안 반응하지 않다가, 아주 느릿하고 불명확하게 말했다. "자네…리만러스나 고대의 무훈들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하지 않는건가?"


  "무…물론 원하신다면 하실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고귀한 전사시여, 저희가 당신께 바라옵는 것은 당신의 전투 기술입니다."


  다시금, 정적. 무리 뒤에서 한 쌍의 아포세카리들이 수근거렸다. "절차적 하자라도 있었나?" "노망끼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직접 보니 그게 맞는것 같-"

 

  갑작스레 병기고 안이 폭발적인 광음으로 가득찼다. 그것이 드레드넛의 스피커에서 분출하는, 웃음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까지는 잠깐의 시간이 걸렸다.


  "아주 좋아!" 그의 발작적인 웃음이 가라앉은 뒤, 비요른이 공표했다. "다시 한번 싸우겠다!" 그의 주변에 모인 마린들의 어두운 표정이 안도의 미소로 바뀌었다.


  "물론입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캡틴이 활짝 웃었다. "당신과 함께 싸우게 되어 정말 큰 영광입니다!" 비요른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아무도 염병할 리만러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에게 황제폐하지루따분한 별칭의 유래를 알려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싸우기 위해 깨어난 것이다. 이번 세기는 이때까지와는 다르다! 만일 이 행운이 지속된다면, 그는 양쪽에 낀 어뎁타 소로타스가 발라주는 축성된 기계성유를 음미하며 완벽한 승리를 자축 -


  "어, 위대한 분이시여? 잠시 동안 멍하니 계신듯 한데… 쌍둥이가 어쨌다구요?"


  "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보다 싸움은 언제 하는거지!?" 비요른은 단호한 자세로, 재빨리 주제를 바꿨다. "나를 적들의 요새로 향하는 함선의 최선두에 대려다다오!"


  "저희는 이미 배틀 바지에 탑승해서 목표를 향해 진로를 잡았습니다." 캡틴이 그에게 고지했다. "짧은 시간 후에 드랍 어썰트 포드에 탑승해서 전투를 개시하게 될 겁니다. 드랍 베이로 따라오신다면, 출발 준비를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요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박에 있었다. 상황이 그가 매번 일어날때와는 다른 것이 당연했고, 그가 주변 환경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비요른은 인정했다. 전장까지의 길고 지루한 여행의 가능성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었기에, 전투에 앞서 불안했던 것이다. 김빠지는 소리와 모터 소리와 함께, 그의 드레드넛 모터 시스템이 포효하며 소생했고 그는 브라더 캡틴을 따라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형제여. 대체 이 배가 무엇이며 설비 배치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못알아보겠군. 우리를 전투로 이끄는 행운을 얻게된 배의 이름이 무엇인가?"


  캡틴은 무언가를 빠르게 중얼거렸고 다른 마린들은 초조한 기색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형제여, 나는 열 번의 천년기를 지내왔지만 이 배가 무엇인지 모르겠군. 설명해줄 수 있나?"


  "저희는 - 저희는 리타니 오브 퓨리를 타고 있습니다, 고대의 존재이시여."


  "흠. 새로 추가된 함선인가보군. 챕터가 잘 해주고 있어. 놀랄만큼 대단히!" 흐릿한 붉은 색으로 환하게 빛나는 그 자신과 주변의 마린들의 아머의 표면을 바라보며, 비요른이 논평했다. "분명히 모든 것이 젠장 맞을 늑대 - 가 아니라 붉은 색으로 덮혀있군. 왜 내가 빨갛지?"


  "이런 젠장." 한 테크마린이 중얼거렸고, 그의 동료 하나가 그를 기계팔로 쿡 찔렀다.


  브라더 캡틴이 비요른에게 돌아서기 전에 그 테크마린을 한번 쏘아보았다. "빨갛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존경하는 비요른님? 붉은 색은 저희 챕터의 색이었 -"


  "조용히!" 비요른이 명령했고,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비요른은 칸막이 근처로 가까이 몇 발자국을 움직였고 그의 한쪽 팔의 표면을 시험삼아 칸막이에 긁었다. 익숙한 밝은 파란색이 긁혀진 붉은 페인트 층 아래에서 엿보였다.


  분명, 비요른은 분명히 제국내 다른 그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그리고 스페이스 울프의 프리스트들은 비요른이 노망들어가는 중이라고 믿었으나, 실제로 그의 정신적인 능력은 그 이전 어떤때보다도 날카로웠다. 가끔씩은, 긴 휴식 뒤에는 가벼운 준비운동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는 붉은 아머를 입은 무리에게 고개를 돌렸고, 방 안에는 날아가는 새와 핏방울 도해가 그려진 어깨 보호구와 배너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기, 강력한 비요른이시여, 다 설명하겠습니다." 캡틴이 입을 열었으나, 비요른이 단칼에 잘랐다.


  "닥쳐! 생각중이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모두들 걱정하며 비요른이 결론을 내릴때까지 기다렸다.


  "…늑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잠시 서로 눈치를 보았다. 결국에는 브라더 캡틴이 앞으로 밀려나서 말했다. "저희…는… 늑대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것 같습니다…?"


  "좋군. 난 그 개 같은 것들을 혐오한다."


  비요른은 드레드넛이 허용하는 최대한, 그의 몸체가 브라더 캡틴 바로 위에서 불안할 정도로 불안정하게 덜덜 떨려서 만일 배의 엔진에서 약간의 떨림이라도 발생한다면 이 불쌍한 마린이 압사할 정도까지의 상태로, 몸을 굽혔다. 그가 말했다.


  "늑대는 금지. 리만 러스에 대한 질문도 금지. 펠 핸드가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금지다. 그 누구도 나에게 고대의 시간에는 나도 삽질을 하고 진지구축 같은 개뺑이질을 했느니냐느니 뭐니 하는 질문을 해서도 안된다." 비요른이 으르릉거렸다. "이게 내 요구다. 동의하면 나는 네 놈들이 어떤 빌어쳐먹을 것들을 도적질 하는지 신경 끄겠다. 알겠나?"


  캡틴이 미친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좋아. 그럼 니미럴 어썰트 포드는 어디 있지?" 그의 파워 클러를 회전시키며 보통 자세로 돌아가서, 비요른 특유의 유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히 이번 세기는 아주 좋은 세기임이 틀림 없었다.

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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