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후에, 나는 데바에 도착하였다. 데바는 매우 험준한 화산 행성으로 평균 기온이 36도나 되는 습한 곳이었다. 행성 전체를 덮은 옅은 안개는 항시 고온을 띄고, 시야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골칫거리였다.

 그 날이라고 딱히 다를 것은 없어서, 수송선의 해치가 열리자마자 연기가 깔리듯 자욱한 안개알들이 스멀스멀 출입구를 타고 올라왔다.

 "끔찍하게 끈적거리는구만."

 짐을 내리느라 분주한 병사들을 내버려두고, 아케이 벨로스 바이트베버 준위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입대동기이자 평생에 걸친 친우였으며 내 수족과도 같은 믿을만한 장교였다. 그런 그가 아련한 눈을 하고 말했다.

 "고향의 여름 생각이 나는군. 밤이면 이렇게 해무가 끼곤 했는데……."
 "언젠간 돌아갈 수 있을거야."
 "그렇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동향 출신인 만큼 내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았지만, 바닷가 출신인 그는 더욱 각별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병사들 앞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화제를 돌렸다.

 "자네, 행성에 관해 브리핑한 내용은 기억하고 있나?"
 "어… 기온이 염병 높은 화상 행성이고… 물이 풍부한 행성이지만 대부분 지하수와 안개의 형태로 분포하는데… 뜨거운 안개가 사람을 사우나에 처넣은 돼지국밥으로 만들어서…"
 "체내 수분의 배출을 가속화해서."
 "그게 그거 아닌가. 아무튼 그래서, 외부에서 3~4시간 활동한 후에는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적대환경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부대 내 장비 보유량이 얼마 없으므로 소수 인원만 파견한다. 뭐 그런 내용아니었나?"
 "뭐, 그걸 물어본 건 아니지만 정답이야. 그런데, 그렇게 잘 알면서 자네 장비는 어디로 갔나?"
 "안그래도 더워서 입을 생각이었어."

 내 핀잔에 아케이는 투덜거리며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물어본 것은 행성의 문화에 관한 것이었네."
 "그냥 요약하면 낙후행성이라는 것 아닌가? 그런건 왜?"
 "복습을 겸해서 말이야. 이제 나는 행성 원로들을 만나러 가볼 생각이니, 자네는 병사들을 관리하고 있게."

 헬멧 안에서 그의 눈동자가 빛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케이가 유쾌하게 말했다.

 "각하. 수행원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자네는 최고선임 장교잖아."
 "내가 없어도 알아서 할 일들 다 하는 녀석들이야. 나 말고도 부사관들이 있어."
 "명령이라면?"
 "명령대로 각하를 수행할 녀석들을 뽑아오겠습니다!"

 아케이가 장난스럽게 경례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숨 쉬었다.

 

 "자네, 보나마나 행성의 문화에 대해서는 듣지도 않았나본데."
 "상관 없어. 어차피 자네 뒤에 서 있기만 할텐데 뭘. 나는 총독 환영 파티에서 케이크나 집어먹으면 되지."
 "나는 상관 있는데다가, 환영 파티 같은건 없어."

 나는 키메라 장갑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아케이를 붙잡고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데바에는 제국의 직접적 지배를 받는 식민 이주민들인 루시타이나인들과 유목농경 생활을 하는 아인간(*1)족인 라서르탄(Lacertan), 두 부류의 인종이 존재하고 있다. 루시타니아인들은 총독의 지배를 받는 행성수도 루시타니아를 중심으로 12개의 성채 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고, 각각 세인(Thane)이라 불리는 봉건영주의 지배를 받는다. 현재 데바에서 일어나는 내전은 이 12개 도시가 편을 갈라 싸우는 일이며, 라서르탄과는 관련이 없다. 라서르탄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나의 중대장으로서의 첫 목표는 하나, 충성파 영주들의 만나 행성의 통치권을 인수하고 전황을 파악하며, 둘, 시민들을 징집해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고, 셋, 가능한 빠른 시일내로 내전을 진압하는 것이다. 특히나 가장 중요한 것은 추가 병력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이름만 중대일 뿐, 8개 분대 5개 중화기반이라는 소대 구성을 그대로 유지한 보병진으로는 중대급 임무 수행에 지장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을 보조할 예비대 구성이 가장 시급했다.

 그런 나의 취지를 충성파 영주들에게 전달했을 때, 그들은 원탁에 앉아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의 대표역인 가이우스 실리우스가 나서서 말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Your Majesty), 지난 습격으로 인해 토지가 황폐해졌을 뿐만 아니라 식량 창고를 약탈 당했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노동력을 징발해서 이번 콩 수확시기를 놓치게 된다면 극심한 식량난이 일어날겁니다."

 지난 습격이란 총독이 살해당한 전투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충병력이 필요하다. 전쟁 중인데도 최소한의 방어병력도 없더군."

 오면서 살펴본 PDF(*2)는 지치고 맥이 빠진데다 숫자조차 부족했다. 수와 질 양쪽이 모두 부족하다면 가장 먼저 채울 수 있는 것은 머릿수이다.

 "그것은 자유민들을 해산했기 때문으로… 수확기만 무사히 넘긴다면 병력은 다시 보충할 수 있습니다."

 사전 브리핑에 따르면, 이 행성은 봉건 행성인 만큼 조세와 군역에도 봉건제가 적용되고 있었다. 영주의 아래에는 자유민인 체얼(Ceorl)과 최하층 계급인 농노(Serf)가 존재한다. 농노에게는 많은 제약과 인권적이 따르지만 대신 군역이 면제된다. 재산 소유가 인정되는 자유민 만이 자경(自警)과 병역의 의무를 가진다. 내 지식이 틀리지 않았다면 반란군 측의 자유민도 귀향했을 것이므로 양쪽의 병력이 모두 줄었을 것이다. 수확기가 끝날때까지 대치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떠련지. 저쪽은 군량에 여유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 점만 믿고 자유민들을 묶어두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쪽 병력이 줄어든 이때는 총공세를 펼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이기도 하다.

 잠깐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곤란하군.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로 반란을 진압해야한다."

 혼란은 짧을 수록 좋은 법이다. 무엇보다 적에게 전열을 재정비 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전쟁이 장기화 될 가능성도 있고, 특히나 적이 충분한 식량을 비축한 후 유격전 형태로 나올 경우에는 한정된 병력만을 가진 우리 중대로서는 대응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상황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군사적 무능함에 따른 처벌을 받을 것이고 행성 주민들은 게릴라 색출을 위해 무차별로 청소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상황을 너무 질질 끌게 된다면 처형당하는 것은 반란분자가 아니라 자네들이 될거야."
 "그런 말씀을 하셔도 먹을 것이 없어서는 싸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이들이 모두 수긍하고 나섰다.

 "그럼… 영주들이 군비를 부담해줄 수는 없는가? 원하는 조건을 걸겠다."
 "불가능합니다. 저희들에게도 남은 양식이 없으니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난 분명 '내전이 거의 진압되었다'라는 보고를 받았는데, 그건 반란군이 이기고 있단 말이었나?"
 "어떤 훌륭하신 총독님께서 반란 방지를 명목으로 저희의 군량미도 한거번에 관리하셨기 때문에."

 이들은 전임 총독에 대한 반감을 전혀 숨기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닙니다. 폐하께서 군공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내전은 금방 종결될겁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만한게 없지. 이야기해보게."

 가이우스 실베루스의 이야기는 반란 발발의 계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전임 총독인 루시우스 타르퀸이 루리스탄의 영주, 빌렘 1세의 딸 예프티나를 욕보인 것으로 빌렘 1세가 봉기하자, 평소 비리와 폭정에 불만이 쌓여 있던 다른 영주들과 농민들이 합류했다. 그들의 입장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반란 만은 안된다는 영주들은 총독의 소집령에 응했고 양측의 충돌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쪽 편은 반란의 명분인 총독이 사망했고, 저쪽 편은 반란의 구심점인 빌렘 1세와 그의 아들들이 사망함으로서 내전은 지지부진하게 끌게 되었다. 하지만 신임 총독이 이들을 사면한 뒤 선정을 베푼다면 이 한심한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거란 이야기었다.

 "마지막으로 이는 저희 모두의 의견임을 알려드립니다."

 실베루스의 마지막 덧붙임에, 나의 뒤에서 부동자세로 침묵하던 아케이가 발끈했다.

 "이 자식들이! 어디서 협박질이야!"
 "협박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저들에게는 심정적으로나마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반역자 새끼들이…"
 "아케이, 됐네."

 총을 뽑으려는 아케이를 제지했다.

 "자네들, 불만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군?"
 "선왕께서 워낙… 탐욕스러운 분이셨으므로."
 "흠…. 선택의 여지를 안 줄 생각인가?"

 실베루스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반쯤은 도박인 셈이다. 로드 커미사르의 모든 권한을 주겠다는 언약을 받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대리. 어디까지 자율권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무능한이라고는 하나 총독은 제국 질서의 상징이다. 총독에 대한 반역은 곧 제국에 대한 반역인 것이다. 그냥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너무 크게 발전했다.

 "적어도 반란군의 항복이라는 형식은 갖춰야 할 걸세. 사면령을 발표한다고 한들, 저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내려놓고 용서를 빌 수 있겠나?"
 "그 점은 문제 없습니다."

 실베루스가 단언했다.

 "제국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반역자에 대한 엄벌이 반드시 필요한데도?"
 "이미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그 말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이 반란은 연극인 셈이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국의 영토는 넓고, 때론 데바처럼 제국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지역도 있다. 이렇게 중요도가 떨어지는 변경 지역에는 제국 직할 관리가 파견될 때까지는 몇십년이 걸릴지 모른다. 제국에서 조사관을 파견해서 비리를 수사한다는 방법도 있지만… 일개 소대장이 총독 대리로서 파견될 정도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행성까지 인퀴지터 혹은 그에 준하는 조사관이 파견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탐관오리의 폭정을 견디다 견디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게 된 행성민들은 자신들의 힘을 총독을 축출할 계획을 세운다. 희생 역을 맡은 반란군 지도자들이 민중을 이끌어 총독을 제거하고, 충성파 역을 맡은 이들은 형식적으로 이들과 대립하며 충성을 보인다. 총독이 사라진 후, 반란군은 충성파에게 진압을 당하고. 반란군 지도자들이 처형이라는 형식으로 산제물이 되면 행성은 다시금 제국 영토로서 평화를 되찾는다.

 굳이 그들을 진정 처형할 필요도 없다. 빠른 시일 내에 반란이 진압되고, 누구의 시체에든『반란군 지도자』라는 칭호를 붙여 증거로 제시하기만 한다면 제국의 입장으로서도 굳이 이런 사소한 분쟁 따위에 깊이 관여할 일이 없다. 오히려, 신속하게 처리되기만 한다면, 그리고 십일조만 꼬박꼬박 납부한다면야 이 정도 일은 덮어둬도 좋을 정도다. 인류의 생사를 걸고 끝 없는 투쟁을 벌이는 시대에『누가 총독이냐』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새끼 손가락의 손톱이 잘려나가는 정도 밖에 안되는 일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런 형식의 정권 교체는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다.

 다만, 괜히 휘말려서 반쯤 어거지로 공범이 되어야 하는 나로서는 황당할 따름이다. 아마도 자기들 딴에는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상황을 마무리 한다는게 내가 너무 일찍 도착한 나머지 일이 꼬인 것이겠지만. 우리 연대가 우연히 근처에 있었다는 것이 서로에게 불행이 된 셈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호전적인 총독이 부임했다면 도대체 어쩔번 했나.

 "좋다. 반란군에 공문을 보내라. 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로는 반란군은 모두 해산하고 반란에 참여한 영주들은 비무장으로 내게 찾아와 충성을 맹세해야하며, 둘째로 반란 수괴인 빌렘 1세의 시체는 화형한 후 그 유골을 제국에 보내야한다. 이 조건이 지켜진다면 그대들의 뜻에 따라 자비를 베풀도록 하겠다."
 "폐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실베루스는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안도의 한숨을 쉰 것 같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일곱명의 사람이 찾아왔다. 한 사람은 여성이었고 여섯 명은 남성이었다. 모두 반란 영주였다. 두 명의 남성만이 늙었고 나머지는 모두 젊거나 어렸다. 심지어 몇 명은 소년이었다.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새 군주를 뵙습니다."
 "누가 대표인가?"

 검은 갑옷의 늙은이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저, 헤링겐의 영주 에드버트가 주군에게 자비를 구걸하러 왔습니다."
 "그대가 대표인가? 빌렘 1세의 뒤를 이은?"
 "그의 외할아버지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영주와 그 후계자들이 죽었습니다. 저 또한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불쌍한 늙은이입니다."

 그는 고개를 조아리며 간청했다.

 "저희 일곱 영지에는 후계가 없습니다. 어떤 영지는 새 영주가 성년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루리스탄은 영주와 그 자식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데,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저희가 가문만은 이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전 총독은 무능하고 탐욕스러웠지만, 결투사(*3)로서의 재능 만큼은 상당했던 것 같다. 총독 관저로 습격해온 블렘 1세를 결투로 쓰러뜨리고, 격분해 달려든 그의 아들들마저 쓰러뜨린 후 세 명의 영주를 더 베고 힘이 다해 죽었다고 한다.

 그들 모두가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

 "충성의 증표로 보낼 볼모조차 없습니다. 대신이라고 하긴 뻔뻔스럽지만, 빌렘 1세의 하나뿐인 혈육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뿐인 여성이 걸어나왔다. 그녀는 칠흙 같은 검은 생머리와 따뜻한 우윳빛 피부를 가진 여자였다. 흑옥 같은 맑은 눈동자에 슬픔을 가듬 담고서, 허리까지 늘어뜨린 머릿결은 발걸음에 맞춰 흔들거렸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예프티나라고 합니다."

 나는 그녀의 붉은 입술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땔 수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그녀에게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나는 넋을 놓을 뻔 했지만 이어진 에드버트의 말이 나를 제정신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좋은 여성입니다. 필시 폐하를 즐겁게 해드리겠지요."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숙녀일텐데. 그대들이 지켜야 할 고귀한 여성이 아닌가?"
 "이미 한 번 더럽혀진 여자입니다."
 "목숨을 구걸하는 비겁자의 입에 걸맞는 더러운 이야기로군."

 아주 더럽기 짝이없는, 구역질이 나는 이야기였다. 이 여자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일어난 이들이 이제 와서는 제 편의에 따라 한 여자를 희생시키려 하고 있었다. 아주 대단한 기사도였다. 이들이 또 무엇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휘둘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말했다.

 "방금 그대의 말은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 하지만 단 한 번 뿐이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입을 잘못 놀린다면 그에 걸맞는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야기는 끝이다. 볼모는 없다. 그 누구도 처형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포로도 받지 않겠다. 각자의 영지로 돌아가서 이때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대들의 의무를 다하라."
 "하지만 폐하, 이것은 그녀가 자청한 일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불복하는건가? 나는 볼모도 처벌도 없다고 했을텐데."
 "그렇다면 폐하."

 예프티나가 은장도를 뽑아들었다.

 "제게 남은 일은 스스로 죽는 것 뿐이로군요."
 "폐하, 이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의무 입니다."

 나로서는 봉건적 명예와 더럽혀진 처녀성의 관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허세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만의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해도 여성이 자결하도록 나둔다는 것이 나의 양심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모가 아니라 손님이라는 입장이라도 괜찮다면… 받아들이겠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1) 아인간 : Abhuman. 레틀링, 오그린과 같은, 인간으로서 공인된 돌연변이들을 말한다. 인류제국의 신민으로서 존재하는 아인간들에는 레틀링, 오그린, 비스트맨, 트로스, 나이트사이더 등이 가장 널리 알려진 종족이다.

*2) PDF : Planetary Defence Force. 행성 총독의 직할로서, 총독에 의해 모집되고 훈련되어 지휘 받는 군대를 뜻한다. PDF의 훈련도는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례로, 카디아 내무위병단(Cadian Interior Guard)은 아바돈의

*3) 결투사 : 과학의 발달, 특히 방어구의 발달은 특이한 전쟁 양상을 가져왔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근접병기와 근접공격기술의 발달이다. 총과 같은 투사무기의 발달이 각종 보호장비를 뚫지 못하게 됨으로서 지상전에서는 잦은 근접전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다양한 근접병기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병사들의 사기를 고양하거나 적의 사기를 낮추려는 목적에서든, 자신 스스로의 명예 때문에서든, 아니면 전술 혹은 전략적인 이유에서, 전장에서는 분대급 이상의 지휘관들 사이의 결투(Challenge)라는 것이 자주 행해진다.

 결투에서 승리하여 적 장교의 수급을 취했다면 자연히 아군의 사기는 높아지고 적병의 사기는 낮아진다. 또한 해당 전술단위(Unit)의 지휘관이 사라지기 때문에 적에게 지휘체계의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다. 반대로 적이 결투를 거부하고 일반 병졸인척 부하의 사이로 숨게 된다면, 병졸인척하기 위해 부하를 지휘할 수 없으므로 해당 장교는 그 전투에 한 해 지도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진다. 얼핏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이런 합리적인 이유에서 외계인 사이에서든 인류 제국에서든 전장에서의 결투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4) 뾰족귀 : 엘다가 인간을 원숭이라는 뜻을 가진 몬카이 Mon-keigh라고 부르는 것처럼, 인간 사회에도 엘다를 경멸하는 칭호가 있다. 대개는 강한 경멸을 담아 외계종 Xenos라고 하지만 때떄로 뾰족귀 Keen Ears, 째진눈 Chink, 사기꾼 Liar, 앙상한 Scrawny, 비열한 Sneaker, 뚜쟁이 Poncy 등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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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주석은 창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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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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