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나? 내가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 말 대로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네들 또한 그렇지 않은가. 시기적절하게 도착하여 살아남았으니 말이야.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가는 듯 하군. 그렇다면 잘 듣게. 나, 가이영 세이 원딩턴이 이야기 해줌세.

 나는 '코리-3'이라고 명명된, 우리 스스로는 '코리'라고 부르는 행성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행성 대부분이 물로 덮힌 곳이며, 성층권이 폭발성 유독 대기층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행성이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인류 제국에서는 코리-3을 거주불가능한 가스행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 코리 행성인들은 인류 제국과는 오랜시간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고. 우리 스스로는 폭발성 대기를 통과할 기술력이 없었고, 외부에서는 코리가 문명 행성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지 않아 깨졌다. 행성 주민들은 남부 연합과 북부 동맹으로 나뉘어 정치적 견제를 하고 있었는데, 북부 동맹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사이커로 각성한 것이었다. 미숙한 사이커의 정치적 탐욕과 야심이 화를 부추겼다. 그는 악마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긴장의 끈을 놓을 때 마다 워프의 악마들이 그를 유혹했다. 악마가 보여주는 환상은 현실과 구분할 수 없었고, 눈을 감을 때마다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신민들의 목소리는 감미로운 벌꿀주와 같았다. 매일밤 그의 왕국과 명예와 영생을 약속하는 목소리. 결국 그는 목소리에 굴복하고 말았다. 하긴,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겠다는데 혹하지 않을 자가 얼마나 되겠나?

 전쟁이 일어났다. 북부 동맹의 대다수가 타락하고 말았다. 불사자의 군대가 남진해오는 동안, 너글의 역병이 행성 전역에 퍼졌다. 많은 이들이 쇠약해졌고 전염병을 이겨내지 못한 이들은 좀비로서 부활했다. 많은 이들이 움직이는 시신에게서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 나 또한 인면창으로 괴로워하던 나의 여동생을 내 손으로 두 번이나 죽여야했다. 괴로운 일이었다. 이내, 가족을 잃은 많은 이들이 군대에 자원했다. 27살이었던 나 또한 그들 중 한명이었고, 유격부대에 배속되었다.

 희망 없는 싸움이었다. 전의 만큼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지만 행성 최고의 소총이 오토건*1) 만큼의 화력도 안 나오는 조잡한 총기었다. 낙후된 기술력 때문이었다. 적들은 사지를 분쇄하지 않으면 다시 일어났다. 죽은 자들은 적이되어 다시 일어났다. 우리의 병기로는 악마의 무리에 대적하는 것이 힘들었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카오스 마린들은, 단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오십 배가 넘는 병력이 필요했다. 용감한 이들이 때로는 목숨까지 내놓은 육탄 돌격까지하며 지연전을 펼쳤지만 전투력의 열세와 지휘 체계의 결함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항다운 저항도 펼치지 못한 채로, 단 3개월 만에 단 3개의 도시를 제외한 모든 구역을 잃었다. 구석에 몰린 것이었다. 최후의 전투였다. 더 이상 몰려날 곳도 없는 곳에서 15일 간의 절망적인 방어전 끝에, 패배가 확정된 순간, 하늘에서 기적이 나타났다. 자네들, 스페이스 마린이 내려온거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카오스 세력의 활동을 감지한 이단심문소가 병력을 급파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그 순간 만큼은 모든 이가 신의 기적으로 밖에 느끼지 못했다. 이 때 살아남은 이들이 황제교로 개종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겠나?

 스페이스 마린 챕터와 임페리얼 가드로 구성된 1개 군단이 급파되어 전쟁을 종결시켰다. 제국제 무기로 재무장한 코리인의 군대도 그들을 보조했다.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2년에 걸친 전쟁이었고 행성의 70%가 파괴되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급격히 퍼진 황제숭배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행성 주민들의 만장일치 속에서 내 고향은 제국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코리인들의 환영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우리는 순수성을 의심받은 것이었다. 막 편입된 행성인데다 카오스 신앙이 자생한 행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행성의 '정화'는 다행히도 피해갔다. 하지만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행성 전역이 초토화되었기에, 세금 대신 십일조*2)로서 편성된 18개 연대 14만 7천명은 임페리얼 가드로서 재훈련 받은 뒤 각각 이단심문소와 커미사리에트*3)에 배속되었다. 코리 행성의 PDF또한 중무장한 타지역 출신 연대와 함께 배속되었다. 표면상의 이유는 '신생 연대이기에 노련한 부대와 협동작전을 통해 전투경험을 쌓는다'는 것이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반란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낌새가 안좋으면 그대로 쓸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래. 순수성과 충성심을 시험받게 된 것이었지. 그건 나의 부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소속된 제 3983 특수강습유격대는 다른 부대와 합쳐져 제 14 코리안 연대로 재편되었다. 지휘관은 커미사리에트에서 파견된 로드 커미사르 제네럴 안드레아 각하가 맡았다. 그는 강인하고 완고한 노병이었지만 100년이 넘게 복무한 우수한 군인이었다. 몇년 후에야 알았지만 커미사르로서도 보기 드물게 유연하고 관대한 장교였다. 나는 그의 휘하에서 40년을 근무하였다. 타우, 엘다, 티라니드, 오크와 같은 외계인들과 대적했고 가끔씩은 해적, 반란군, 이단자와 같은 비정규군도 상대했다. 때론 이단심문소나 시스터들과 충돌하여 아군끼리 총을 겨누기도 했지. 긴 시간이었다. 정말로ㅡ 긴 시간이었지… 순수성을 증명하기 전까지 제대는 허용되지 않았어. 내가 병사에서 분대장으로, 분대장에서 선임소대장으로 진급하는 긴 시간 동안, 스스로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네. 순수성의 증명! 푸른 행성. 물의 도시. 사시사철 온난하며… 나의 가족이 기다리는 그곳. 아름다운 나의 고향! 그 곳을 다시 한 번 더 볼 수만 있다면…….

 어느날이었다. 로드 커미사르가 나를 불렀다. 그는 수명연장수술을 받은 귀족 특유의 굵은 목소리로 운을 띄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네."

 나는 잔뜩 긴장했다. 내 소대의 군기문란이 주제가 아니길 바라면서 말이다. 죽을때 죽더라도 총살 같은 불명예는 사양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말은 나의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데바라는 행성에서 PDF의 일부가 반란을 일으켰네. 행성은 지금 내전 상태라는군."

 안드레아가 말했다.

"반란은 거의 진압되었지만 피해가 작지 않아. 그리고 데바 행성에 지원을 보낼 수 있는 부대는 우리 뿐이고."
"그러면."

 내가 말했다.

"현재 우리 부대의 작전 구역은 어떻게 됩니까? 후속 부대에 넘겨줍니까?"
"아니. 자네가 간다."
"그건…?"
"자네는 이제부터 나의 대리인이다. 자네의 부하들과 함께 증원군으로서 데바로 가도록 하게."

 나는 어리둥절해서 커미사르를 바라보았다.

"각하. 저는 고작 소대장입니다."
"경험 많은 소대장이지."

 로드 커미사르는 나에게 데이터시트*4)를 넘겼다. 데이터시트에는 데바가 적대적 환경 장비*5) 없이는 작전 수행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라던가, 중세 수준의 문명을 가진 낙후된 행성이라는 것 등이 적혀있었다.

 내가 데이터시트를 살펴보는 동안 안드레아가 말을 이었다.

"데바의 총독이 사망하였다. 새 총독이 임명되기 전까지는 자네가 군사 업무와 행정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할거야. 그런 것도 있으니 자네를 1계급 진급시켜주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내가 부대에서 몇 안되는 학위보유자였던 것이다. 더구나 행정학 계통은 나 뿐이었다.

"질문 있나?"
"제게 특별한 지시사항이나, 총독 대리로서의 방침 같은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정확히는 총독 대리가 아니라."

 커미사르 제네럴이 특유의 장교모를 벗었다. 월계관 장식이 황금 돋을 새김 된 특별한 장교모였다. 장교모 아래로 드러난, 그 얼굴의 크고 작은 흉터와 바이오닉 임플란트*6)가 지난 200년 간의 상흔을 증언하고 있었다.

"나의 대리로 가는거야. 자네에게 커미사르 제네럴의 모든 권한을 위임하겠네. 행성의 충성심을 고취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을 해도 좋네. 내 권한 안의 일이라면 뭐든. 이 보구*7)는 그 증표일세."

 그는 그의 모자를 나에게 씌웠다.

"이봐, 가이. 자네는 내 목숨을 몇번이나 구해줬지. 그리고 자네의 능력을 이미 여러번 증명했네. 자네는 내가 가장 눈여겨보는 장교 중 한 명이야."
"각하께서도 몇 번이나 제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난, 자네가 대위임에도 소대장이라는 것이 항상 마음이 걸렸다네. 이제야 자네에게 걸맞는 자리를 주는군."
"감사합니다."

 안드레아가 장교들을 격려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그날 따라 그의 격려가 무겁게 느껴졌다.

"잘 해낼 수 있을거라 믿네."

 나는 경례로 대답했다.
 그날 부로 나의 소대는 카디안의 리만러스와 베인 울프를 포함한 전차소대, 벤데타 편대와 함께 독립중대인 제 702 분견대로 재편되었다.



*1)오토건과 현대식 소총 : 오토건은 4만년대의 가장 흔하고 낙후된 무기지만, 사람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현대식 소총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2)십일조 : 십일조가 곧 행성에 물리는 세금이다. 세금과 다른 의미로 쓰인 말이 아니다.

*3)커미사리에트 : 커미사르를 통괄하는 조직. 임페리얼 가드와는 명령체계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하이고딕으로는 오피시오 프레펙투스라고 한다.

*4)데이터시트 : 관련 자료라는 뜻이지만, 인류 제국에서는 문서 읽기 전용 장비를 의미하기도 한다. PDA나 타블렛 같은 것.

*5)적대적 환경 장비 : Hostile Environment Gear. Hostile Environment Equipment라고도 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지역에서 제국군 장병들의 방호력과 생존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착용하는 장비들이다.

*6)바이오닉 임플란트 : 신체부위의 기계대체품. 단순히 신체를 대체하는 것 뿐만 아니라 특수한 기능이 포함되어 있거나 해당 부위를 강화시켜주기도 한다.

*7)보구 : 정복의 보구 Heirlooms of Conquest라고 불리는, 임페리얼 가드의 유물들이다. 각각 아주 귀중한 능력을 가진 특수한 보물들로서 실전된 기술로 만들어졌거나 인류제국의 기술을 집대성한 무기들이다. 로드 커미사르 안드레아의 보구는 통솔의 월계관 The Laurels of Command 이라는 것으로, 착용자가 내리는 명령에 거의 절대복종하게 만드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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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산맥 너머의 깊은 골짜기. 안개 낀 대지 위로 재가 섞인 검은 웅덩이가 곳곳에 고여있고, 요새의 폐허 군데군데에는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매캐한 지옥의 냄새는 배고픈 들개무리조차 쫓아버렸고 겁먹은 까마귀들은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패배한, 상처입어 쓰러진 용사들의 시체는, 배신당한 희망을 눈동자에 가득 담았고. 다시오지 않을 내일, 그리고 부서진 무구와 병기의 잔해 사이로 쓰라린 패배의 상흔을 가슴 깊이 새긴 늙은 군인 한 명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때로는 그 옅은 존재감마저 잃으면서, 그저 앉아있을 뿐이었다.

 

어디선가 세 명의 거인들이 나타났다. 황제의 위대한 전령, 인간-신의 아들들이며 인류의 수호자이자 죽음의 천사인 그들은 자신들이 선발대로서 정찰 임무를 받고 왔노라 밝히고, 운 좋은 가드맨에게 이 지역에 주둔해 있어 마땅할 방위 연대의 존재에 대해 물었다.

 

운 좋은 가드맨. 그 말을 들은 노병의 눈에 일순 뜨거운 무언가가 스쳐갔다. 노인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담담하게, 새로운 전설이 될지도 모르는, 은하 절반을 가로질러 변방까지 온 황제의 종복들과 최후의 쌍두 독수리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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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6일이 지났다. 5일에 만났던 연락선은 지금쯤 베네치아에 도착했을까? 선원들이 전원 베네치아의 뱃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이겠지. 현재 우리 함대는 옥시아 섬을 지나, 그리스 서안을 남하해서 파트라스 만 안을 향하고 있었다.
 새벽별이 지고 새벽 미명이 막 가시기 시작할 무렵, 다음 보초와 교대를 한 내가 막 그물침대에 누우려 할 때였다.
 "적이다! 이슬람 함대다!"
 나는 그물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주위에 잠들어있던 선원과 육군들도 모두 떨어지듯 그물침대에서 내려왔다. 포술장인 나는 재빨리 뱃머리로 달려갔다. 저어기 수평선에서, 이슬람 함대가 태양을 배경으로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해 수평선을 까맣게 메웠다. 아니, 이렇게 멍하게 있을때가 아니다. 주위를 보니 스페인 땅개들이 입을 벌리고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청아! 배 처음보냐? 빨리 대포를 장전해!"
 가만히 있는 신참 포병들에게 고참 포병들을 돕도록 지시했다. 포병들은 대포를 뒤로 당겨, 포신 내부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는 약실에 화약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따라온 포병들도 작업을 거들었다.
 내가 대포를 장전하고 있을때, 다른 선원들도 제 위치를 잡았다. 총사령선의 기신호에 따라 부관이 명령을 내리고 갑판장이 북을 두드렸다. 노잡이들이 북소리에 맞추어 노를 저었다. 우리 배는 미리 정해둔 대로 부사령관 로드 아고스티노 바르바리고가 지휘하는 좌익함대 2열 우측에 자리잡았다. 위치 상으로는 좌익 기함의 바로 옆이었다.
 "정지! 경계태세로 대기한다! 당번은 식사준비를 하도록!"
 부관이 함장의 지시를 하달하자 식사 당번이 화덕에 불을 피우고 베테랑 선원들은 갑판 여기저기에 최대한 편히 쉴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쉽도록 자리잡았다. 나도 포 옆에 기대어 앉았는데 신참 포병 하나가 눈치 없이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답답한 녀석.
 그래도 다른 때 같으면 먼지가 나도록 팼겠지만, 전투 전이라 긴장을 했겠거니 하고 긴장을 풀어주고자 했다. 뭐, 아직 실수한 것도 없으니까.
 "어이, 신참. 그… 이름이 뭐였더라? 어쨋건 여기 앉아."
 "예, 옛! 전 카를로 입니다!"
 아, 그래 카를로. 열두 살으로 우리 배에서 제일 어린녀석이었지. 노잡이의 피해가 적었던 덕분에, 다른 배와 달리 우리 배는 선상 경험이 없는 신병은 카를로 한명 뿐이고 함대 내에서 베네치아인의 수가 가장 많은 군용 겔리다.
 "긴장되냐?"
 "아, 아닙니다! 그냥 흥분되는 것 뿐입니다!"
 호오? 이 자식 보게?
 카를로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열두살 답지않은 씩씩한 태도가 이 소년의 말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그래? 다행이군. 그래도 힘빼. 괜히 벌써부터 힘주지 말고."
 "벌써부터라뇨? 이제 싸우는거 아닌가요?"
 카를로는 어리둥절한 듯 했다.
 "아냐. 아까 부관이 식사 준비하라고 한거 너도 들었지? 식사하고 명령이 떨어질때까지 대기하는거야."
 "명령은 언제 떨어지는데요?"
 "그거야 총사령관 마음이지."
 그 다음은 가족 이야기, 베네치아에서의 생활 이야기 등을 나누며 긴장을 풀어줄까 하는데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너, 혹시 패밀리 네임이 '젠'이냐?"
 "네, 카를로 젠. 에헤헤."
 "카를로 젠이라… 좋은 이름이구나."
 "네! 전 카를로 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고보니 카를로는 자기가 자원하는 걸 징병관이 곤란해하자 억지를 써서 입대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너 혹시 카를로 젠처럼 되고 싶다고 군에 지원한거냐?"
 "네, 어짜피 전 넷째니까 혹시 전장에서 죽더라도 집안에 큰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고요."
 이런, 곤란한 아이로군. 끔찍한 소리를 해대면서 씨익 웃고 있다.
 보아하니 베네치아의 귀족 아니면 부귀한 상인 집안의 아이이리라. 포병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겠지. 지금 베네치아는 스페인 땅개들 손을 빌릴정도로 인원이 부족하니까.
 "너…."
 "모두들 주목!"
 내가 카를로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함장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보기 드물게 긴 칼을 찬 함장은 시뻘겋게 물들 얼굴로 주먹을 빙빙 휘두르며 짧은 연설을 늘어놓았다.
 "이번 키프로스에서 벌어진 만행은 모두들 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한 번 맺은 협정을 일반적으로 파기하고 잔인한 고문을 자행한 비열하고 야만적인 이교도 투르크와 지중해의 상선을 약탈해 빌붙어 살아온 벌레같은 해적놈들을 오늘 모두 상어밥으로 만드는거다! 주의 가호가 너희들에게 있으리라!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 베드로의 가호가 너희들에게 있기를!"
 함장의 말은 고요한 수면을 타고 투르크 함대에까지 들릴 기세였다. 적어도 좌익함대 전체에는 들렸으리라. 그러나 함장은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듯 했다. 그는 두 손을 펼쳐들고 만세를 외쳤다.
 "야만인에게 죽음을!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 만세!"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 만세!"
 고무된 선원들과 노잡이들, 심지어 죄수 노잡이까지도 함장을 따라 만세를 외쳤다. 이에 질세라 베네치아의 앙숙인 스페인 육군들도 만세를 외쳐댔다.
 "스페인 왕과 그의 무적함대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스페인 왕국 만세!"
 하나 둘 따라 만세를 외쳐감에 따라 함대 전체가 흥분으로 들끓었다. 각각의 만세는 어느 시점부터 박자를 맞추더니 모두들 한 목소리로 "이교도에게 죽음을! 기독교 연합 함대 만세!"를 외쳐댔다. 카를로도 신이 나서 만세를 외치며 뛰어다녔다. 거참, 힘빼지 말라니까….
 나는 힘을 아낄 겸, 그리고 '교황청에 영광있으라! 토스카나 공국 만세! 교황 성하 만세!'나 '제노바 공화국 만세!', '성 요한 기사단이여!'같은 함성은 들려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이 늙은 몸에서는 카를로라는 아이를 꼭 살려내어 얼마나 훌륭하게 성장하는지 보고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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