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길 넘겨줄 순 없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소대장은 적의 총탄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서 죽었다. 북부군의 괴상한 갑옷은 K-16으로는 기스 정도 밖에 나지 않았다. 해골과 뾰족한 장식들이 주렁주렁 갑옷은, 화포의 맞자 잠깐 비틀거렸지만, 이내 왼손에 든 권총을 쏘며 달려왔다. 시체가 즐비했다. 방어선은 3차까지 뚫렸고, 본부가 바로 뒤에 있었다. 그 뒤로는 수도가 코앞이다.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여기서 막아야한다. 카이영은 떨리는 손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 얄개 새끼가! 부소대장이 발광하듯 비명을 지르며 수류탄을 뽑았다. 끌어앉고 자폭하려는 거구의 부소대장을, 갑옷은 코웃음 치듯 톱날로 썰어버렸다. 피와 내장을 흩뿌리며 부소대장이 폭발했다. 발광하며 총기를 난사하는 소대원들을 비웃으며, 갑옷은 포효 했다. 해골 옥좌에 해골을!

 

 카이영 병장님?”

 -!”

 

 카이영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깨어났다. 쪼그라든 기도가 대신 비명을 질렀다. 끼으아아악하고, 목이 졸리는 소리를 내며 카이영은 발버둥 쳤다.

 

 병장님? 병장님?”

 

 불침번이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카이영은 손을 저으며 등을 두드려주는 불침번을 밀어냈다. 등에 가해지는 충격이 그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한참을 몸부림치고 나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카이영은 쇳소리를 내며 말했다.

 

 , …….”

 여기 있습니다.”

 

 수통의 물을 우겨넣듯 마시고는, 카이영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토해내고 마시고 토해내고 마시고를 세 번 정도 반복하고 나서야 정신이 좀 들었다.

 

 괜찮으십니까?”

 , 아니괜찮아.”

 

 온 몸이 땀범벅이었다.

 

 그냥 더위 먹은 것 같아.”

 그러게 말입니다. 말 그대로 찜통 행성 같습니다.”

 

 아펜니노 행성은 일종의 화산 행성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각 활동이 활발한 행성이었다. 행성 전역에 크고 작은 간헐천들이 생성되어있었고, 간헐천들은 물과 증기를 내뿜었다. 말이 간헐천이지 곳곳의 분사구에서는 쉴 새 없이 증기가 나왔다. 활발한 화산 덕분에 행성 지하수는 항상 끓는 물이었고, 24시간 내내 행성 표면이 뜨거운 안개로 덮여있었다. 기본적으로 행성표면의 온도는 30도에서 70도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사람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배키안 연대에게는 주둔지내의 온도조절 시스템과 적대적 환경 보호복이 지급되어야 했지만, 때 아닌 워프 폭풍 때문에 수송대의 도착이 늦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연대는 작전이 거의 불가능 할 정도였다. 아펜니노 행성 환경에서는 전투군장을 한 채 5분만 걸어도 물에 빠진 것처럼 옷이 땀범벅이 되고, 습기 찬 뜨거운 공기는 숨 쉬는 것조차 괴롭게 했다. 20분이면 수통의 물이 바닥났고 1시간 정도면 탈수 증세로 쓰러지는 병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비상용으로 갖춰둔 찬물도 반시간도 되지 않아 뜨거워졌다. 덕분에 병사들의 스트레스는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덤으로 작전행동은 밀폐된 차량을 이용한 정찰 정도로 제한되었다. 지휘관들은 자기 휘하의 병사들을 정찰조에 편성하려고 애를 썼는데, 그래야만 자신들도 키메라에 탑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연대 작전회의도 키메라 내에서 열릴 정도였다.

 이러한 환경은 예상치 못한 이점을 주기도 했다. 병사들이 열기를 피하기 위해 파견중대원들과 가까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카디안 차량 운용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연대의 인기인이었다. 1소대의 괴짜 핸슨 중위에게 조차도 잘 보이려고 애썼던 것이다. 상호간의 교류가 점차 활발해졌으며, 두 연대의 병사들은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었다. 그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기도 했지만 커미사르들은 적당히 눈감아주고 있었다. 이러한 조취가 연대장의 지시라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뜨거운 공기 속에 있자, 안 그래도 안 좋던 기분이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악몽에는 진절머리 날 정도로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이 뜨거운 공기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나마 배키안 연대원들은 나은 편이었다. ‘하늘로부터의 기적에는 사계절이 있기 때문에 병사들은 뜨거운 기후를 어느 정도 겪어본 편이었다. 그렇지 않은 카디안 병사들은 밤에도 몰래 차량 안에서 잘 정도였다. 한번 일어나자 더워서 도무지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자야만 했다. 낮이 되면 더 뜨거워지기 때문이었다. 카이영은 감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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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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