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사기꾼

Etc 2015. 9. 18. 08:44

서명 : 세 명의 사기꾼

출판사 : 생각의 나무

저자 : 불명(不明)

 

  때는 17세기, 독일에서는 30년 전쟁이 일어났다. 이는 개신교도의 종교자유 인정을 둘러싸고 카톨릭과 개신교 양방의 갈등으로 촉발된 전쟁이었다. 하지만 구교 국가인 프랑스가 개신교 측으로 참여하면서 성전(聖戰)이라는 대의명분은 희박해졌고, 전 유럽의 국가들이 참전한 이 전쟁은 각 국가의 패권다툼으로 변했다. 기존의 강국들의 경제는 파탄 났으며, 특히 전쟁의 무대가 된 독일 도시와 공국들은 잿더미로 변했다. 급료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대다수의 군인들과 패잔병들은 민가를 약탈했다. 약탈을 피해간 도시는 독일 전역에서 고작 12% 뿐이고 독일 인구의 70%가 전쟁으로 사망하거나 유랑민으로서 독일 호적에서 사라졌다. 국가가 도탄에 빠지면 기존의 정의는 대의명분을 잃는 법. 이렇게 질서가 사라진 아비규환 속에서는 질서와 정의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세 명의 사기꾼이라는 책은 이 당시 즈음부터 저자 불명으로 지식인 사이를 떠돌던 책이다.

 

  이 책은 당시 불온서적의 정점에 서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게 무려, 국가 권력의 근본적인 명분이 되어주는 종교를 겨냥한 정치서적이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당대 유럽의 절대적 국교였던 아브라함 계 종교 창시자 모세, 예수, 무함마드는 교활한 사기꾼들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란 자연의 힘에 대한 인간의 무지에서 발생하였고, 성직자들은 이에 편승했을 뿐인 사기꾼들이라 주장한다. 심지어 각 종교지도자들이 했을 법한, 부하들을 부려 고의적으로 역병을 퍼뜨린다던가, 거렁뱅이를 매수해 천사의 목소리를 흉내 내게 한 뒤 죽여서 증거를 인멸한다는 식으로 경멸에 가득 찬 세밀한 묘사까지 하고 있다. 예컨대 예수에 관해서는 이러한 묘사를 하고 있다.

 

『… 이집트인들의 학문과 사상에 대해 결코 모르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영이 여인을 임신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때마침 구상 중인 계획에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다. 무지한 자들의 세계를 호령함으로써 모세가 얼마나 유명해졌는가를 꼼꼼히 살펴본 뒤, 그는 바로 그와 똑같은 토대를 기반으로 과업을 이루기로 했다.

그리고 일단 무식한 몇몇 사내들을 휘하로 삼아, 자기가 아버지인 성령과 어머니인 동정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설득했다. 그렇지 않아도 허무맹랑한 몽상과 꿈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던 이들 선량한 사내들은 예수의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고, 자연의 질서를 무시한 탄생의 사연이 신기할수록 그만큼 쉽사리 그가 원하는 곧이곧대로 믿게 되었다. …』

- 본문 61p

 

  현대인도 쉽사리 꺼내지 못할 이야기다. 크리스트교와는 관계없는 이들도 질색할 정도의 주장인데 당대에는 대체 어떤 반응이었을지는 뻔히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런 주장의 근본에는 종교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경멸을 넘어 증오심까지 느껴질 정도다. 물론 그간 질릴 정도로 논의 되어 온 주제인데다, 저자도 당시 철학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고루해 보이는 부분도 있고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심지어 저자의 범신론에 대한 이해는 그저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 범신론을 끌어다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군데군데 허점이 보인다. 특히 책 속에 가득 찬 종교에 대한 악의는 현대 상식인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호감을 가지는 이유로는 책 외적인 이유다. 이 책이 최초로 출판된 17세기에는 이미 종교재판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식민지 원주민들은 이교도(異敎徒)라는 죄목으로 아주 잔인하게 고문 받고 살해당했으며, 심지어 중국과 일본의 선교 활동에서까지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 갈릴레이와 브루노가 지동설을 이유로 종교재판을 받았던 것도 이 시기다. 서론에서 길게 늘어놓았듯, 종교가 죄명이 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사회 관념과 반대되는 의견을 옳다고 생각 한다라는 이유만으로 부르짖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분명 정의에 대한 굳건한 신념과 인간 이성에 대한 거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책 속의 주장은 격분으로 가득 차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저 단지 혼란한 시대상 때문에 잠시 삐뚤어진 것이 아니었을까하고. 적어도 나는 이렇게 정의를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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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숙제... 띵가띵까 음악듣고 뒹굴뒹굴 하다보니 어느새 7시 길래 깜짝 놀라서 후다닥 썼다. 뭐... 피곤해서 횡설수설이지만 이 정도면 적당히 서평의 모양을 갖추고 있지 않을까.

Posted by 아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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